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노인시민 재교육을 제안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기사 이미지

양선희
논설위원

얼마 전 지하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제일 앞이었고, 서너 명 뒤에 휠체어 장애인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휠체어 장애인이 우선이다. 엘리베이터가 오기에 휠체어 먼저 타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 뒤에 있던 남자 노인이 나를 밀치며 먼저 탔다. 휠체어가 타고도 남은 자리에 대여섯 명이 더 탔으니 기다리면 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 선배는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 후 처음 지하철 노인석에 앉았단다. 65세가 넘었으니 앉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한데 한 남자 노인이 선배에게 욕을 하며 비키라고 호통을 치더란다.

분노하고 충돌하는 노인인구 느는 현실
초고령사회를 사는 시민교육 다시 해야

 요즘 노인들에게서 이런 식으로 무례와 봉변을 당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요즘 애들 버릇없다’지만 실제로 무례를 저지르는 건 젊은이가 아니라 노인인 경우가 많다. 시위현장에 가스통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나는 것도 장노년층이다. 다른 연령대의 범죄는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주는데 노인범죄는 두 자릿수로 늘고, 폭력과 살인 등 강력범죄 비중이 높은 것도 다른 나라와 다른 특징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 분노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에 젊은이들이 ‘노인충(蟲)’이라며 넌더리를 내는 게 이해도 된다. 한데 그들도 젊어서는 그렇게 막무가내지 않았을 거다. 어른 공경과 어른 우선주의의 전근대적 문화유산을 이어받았는데 세상은 바뀌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니 불협화음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 공경의 시대는 평균수명이 짧았고, 노인은 희소했다. 한데 지금은 7~8명 중 한 명이 노인이다. 10년 후엔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살았던 적은 없다. 노인이 인구의 주축이 되는 사회에 대한 축적된 지식도 경험도 없이 우린 노인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건 노인이나 사회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다시 봤다. 고용정책과 경제 지원책, 보호 대책이 중심이다.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출산장려와 이민 활성화 정책도 추진된다. 노인은 부양·보호하고, 생산인구는 수입한다는 거다.

 한데 10년 후 일상화될 차세대 미래산업은 인간의 노동을 최소화하고 수명을 늘리는 기술이 주력이다. 지식노동도 자동화되고, 로봇·무인자동차·드론·사물인터넷 등은 기계의 힘으로 사람의 노동을 대체한다. 차세대 유전자기술은 난치성 질병을 치료해 수명을 늘린다. 미래산업은 노인의 생산성 약화와 육체적 약점을 보완하며 무병장수하는 사회를 향해 달린다.

 우리 고령사회 정책은 이렇게 세상이 바뀌는데도 부양과 보호라는 전근대적 방식에 갇혀 있고, 생산인구의 연령을 정해 놓고 숫자를 맞추는 현재의 관점에서 미래를 재단한다. 한데 인구 20%를 부양하고 보호할 능력이 있는 사회는 없다. 또 그만큼의 인구가 어른 행세를 해서도 안 된다. 노인은 어른이 아닌 사회의 주축이 되는 생산적 인구로 기능해야 한다. 주축 인구가 사회와 조화하고 소통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행복해지며 사회도 안정된다. 어떻게 이런 사회를 만들까.

 며칠 전 지하철에서 한 노인의 소란을 보면서 순자(荀子)의 권학(勸學)편을 생각했다. 사람은 악한 본성을 타고나지만 예(禮)와 법(法)을 배움으로써 선하게 변한다는 게 요지다. 예법은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늙는 법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전문직도 재교육을 받는다. 나이 대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달라지는데, 시민교육은 어린 시절 학교교육으로 끝나도 되는 걸까. 노인이 원로가 아닌 주력 인구가 되는 전대미문의 세상이 되는 이때에 노인시민의 역할은 새로 규정되고 가르쳐져야 하지 않을까. 이에 노인정책에 노인시민 재교육을 포함하는 걸 제안하고 싶다. 앞으로 수명은 더 늘고, 고령화는 더 심해질 거다. 노인시대를 잘 사는 방법과 지식을 축적하는 것도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본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