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설악에 살다] (9) 유기수의 추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유기수는 토왕폭에 도착한 이튿날인 1977년 1월 9일 화끈한 속공법으로 토왕폭 하단을 7시간 만에 등반했다. 며칠 전 3박4일에 걸쳐 오른 크로니팀이나 전 해의 동국대팀 등반기록(7박8일)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다음 날 유기수는 후배 이봉우와 함께 4시간 만에 하단을 올랐다. 토왕폭 하단은 이제 유기수에겐 연습코스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유기수는 앞에서 오르고 있는 크로니팀에 개의치 않고 곧바로 상단을 등반하겠다고 결심했다.

유기수는 이미 상단의 절반 정도까지 올라가 있는 박영배를 앞지를 자신이 있었다.

비박(야외에서 텐트 없이 자는 것)장비를 지고 하단을 4시간 만에 오른 그는 중단을 거의 뛰듯이 올랐다. 그리고 상단 밑부리의 얼음을 파내고 그곳에 침낭을 폈다. 그 얼음동굴에서 비박한 뒤 동해에 얼굴을 씻은 아침해가 토왕폭 머리 위 함지덕으로 비쳐들기 전에 상단으로 올라갈 작정이었다.

크로니팀은 야간등반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밤이 되면 빙폭에 자일을 고정해두고는 하단 아래쪽에 설치한 베이스캠프로 내려가서 쉬곤 했다.

그런데 이날 밤 박영배의 크로니팀은 베이스로 돌아가지 않고 중단 아래쪽 설사면(雪斜面)에 캠프를 쳤다.

77년 1월 10일 오후 11시 무렵, 토왕폭 상단 밑동 얼음동굴에서 비박하던 에코팀의 유기수는 침낭에서 빠져나와 등반 채비를 했다. 그는 아려오는 오른쪽 무릎을 문지르며 팔뚝에 인슐린을 주사했다. 으스름한 달빛에 더욱 흰빛을 드러낸 토왕폭과 그 위에 드리워진 크로니팀의 고정자일을 바라보며 그는 주사바늘을 팔뚝에 힘껏 찔러 넣었다.

유기수는 헤드랜턴을 켰다. 동시에 중단 설사면에 설치된 크로니팀의 캠프에도 불이 들어왔다. 그들도 자지 않고 에코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기수가 등반을 시작했다. 토왕폭의 가장 밑동의 얼음기둥에 힘껏 피켈을 찍었다. 그리고 4년 전의 송준호처럼 한마리 날쌘 표범이 돼 토왕폭 빙벽을 치고 올랐다.

박영배가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박영배의 크로니팀도 텐트에서 곧바로 뛰쳐나와 고정시켜 놓은 줄을 타고 유마링을 시작했다. 유기수가 아무리 날쌔다해도 줄을 타고 오르는 유마링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유마링으로 쑥쑥 올라오는 박영배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를 보고 유기수가 물었다.

"너희는 오늘 따라 왜 밤중에 등반하나?"

"원래 오늘은 야간 등반 예정이었다."

박영배는 그렇게 응수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