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강의 때 빌 게이츠에게 A학점 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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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흥미 느끼는 분야를 선택해라. 또 우리가 잘 모르는.”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석좌교수
경제학에 '시장 신호' 개념 첫 도입
29세 때 논문으로 29년 뒤 노벨상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72) 뉴욕대 경제경영학 석좌교수의 조언이다. 사공일 본사 고문이 “젊고 열정적인 경제학자나 학생이 많다. 다들 노벨상을 받고 싶어할 것”이라고 하자 한 얘기였다.

 대담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했다. 이탈리아인 부인을 둔 그가 강의 시즌이 아닐 땐 밀라노에 머물기 때문이다. 자택 인근 호텔에서 만난 그는 ‘연구 팁’도 줬다. “세계화를 일종의 바자(bazaar·시장 거리)로 여기는데 나에겐 점차 네트워크처럼 보인다. 어떤 프레임워크가 필요하고 플랫폼도 늘어간다. 시장 크기도 확장되고 있다. 포괄적 측면도 있고…. 그 실상을 포착할 수 있다면 진정 경제학의 토대를 재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조언을 더했다. “오래된 거대 논쟁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말라. 잊어라. 누가 50, 60대의 거시경제학자들이 얘기하는 걸 신경 쓰겠나. 그들은 오랜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네들끼리 그냥 하게 둬라.”

  그 자신은 노벨상 수상을 기대했을까. 여느 노벨상 수상자처럼 그 역시 “예상 밖”이란 답을 했다. 그에겐 그럴 법한 이유가 있다. 학자로서 한창 매진할 나이인 41세에 하버드대 문리대학장이 됐다. 대학 행정으로 빠진 셈이다. 전임자이자 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이기도 한 헨리 로소브스키는 당시 “당신이 이 일을 맡으면 노벨상은 결코 못 받을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스펜스 교수도 “나는 (연구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노벨상은 폴 새뮤얼슨(1970년 수상)이나 케네스 애로(72년), 얀 틴베르헌(69년 초대 수상자)과 같은 사람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새뮤얼슨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로는 이론 경제학과 후생 경제학에 대한 독창적 연구로 이름 높았다. 틴베르헌은 경제동학과 경제분석을 발전시켰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시장 신호’가 결과적으로 그를 노벨상으로 이끌었다. 노벨상을 받게 된 1973년 논문은 한 해 전인 72년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는 경제학에 신호란 개념을 처음 도입한 학자다. 시장 신호 이론은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한 개인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는 그 사람이 표출하는 행동, 즉 신호에 따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펜스 교수는 4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으며 프린스턴대(철학)와 영국 옥스퍼드대(수학)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다. 강단은 하버드대에서부터 섰다. 그 무렵 그의 대학원 이론 과정을 학부생 두 명이 들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였다. 둘 다 A를 받았다고 한다.

  2010년부터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진으로 합류했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글을 쓰고 있다. 세계 지도자들의 온라인 토론장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의 주요 필진이다.

밀라노=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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