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1961~90년 사이의 평균인 섭씨 14도보다 0.73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계속된 지구온난화에다 강력한 엘니뇨 현상까지 나타난 탓이다. 극지방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그린란드 북동부의 거대 빙하 ‘자카리아 이스트롬’에서는 매년 50억t의 얼음이 녹아 바다로 들어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100년까지 산업혁명 이전보다 기온은 3.7도, 전 세계 해수면은 1m 가까이 상승해 해안지역에 거주하는 수억 명의 인구가 이주해야 할 수도 있다.
“온실가스가 온난화 원인” 85년 발표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한 것은 85년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 각국은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자며 회의를 거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사이 온실가스 배출은 늘고 폭염·홍수·가뭄 등 각종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0일(현지시간)부터 다음달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린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2007년 발리 회의 이후 8년간 세계 각국이 공을 들인 이번 회의에서도 감축 계획에 합의를 하지 못하면 2100년까지 ‘기온 상승 2도 억제’ 목표 달성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6일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전 세계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이번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감축에 나서는 이른바 ‘신기후체제’가 출범하게 된다. 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까지는 선진국들만 감축 의무가 있었다. 최근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2020년 이후에는 개도국의 배출량이 선진국을 넘어설 전망이고, 개도국 참여 없이는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묶는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참여 범위를 넓히게 됐다.
이에 따라 세계 170여 개국이 국가별로 자발적 기여방안(INDC), 즉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내놓았다. INDC는 각국이 배출할 수 있는 양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각국이 이행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공약하는 방식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이던 1·2위 배출국인 중국·미국이 적극적으로 돌아서면서 합의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밝다.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를 줄이기로 했고, 중국은 2030년 이전에 배출량을 감소세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도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줄이는 내용의 INDC를 지난 6월 말 유엔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치열하게 다툴 쟁점도 있다. 첫째는 각국이 내놓은 감축 목표를 강화해 나가는 일이다. 지난달 말 유엔은 145개국이 제출한 INDC를 종합·분석한 결과 2100년까지 기온이 2.7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2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미 제출한 INDC보다 더 줄여야 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총회에서는 5~10년마다 각국이 감축 이행상황을 보고하고, 이를 평가해 강화된 새 목표를 정하도록 촉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개도국 지원 문제 막판까지 논란 될 듯그렇지만 개도국들은 선진국들만 평가하고 자신들은 보고만 하기를 원해 논란이 예상된다. 국내 산업계도 협상 과정에서 추가로 부담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경계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환익 산업본부장은 “한국은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이고, 에너지 효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번 COP21 협상 결과가 우리 산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파리 회의 합의문의 법적 구속력 여부다. 의회 비준을 장담할 수 없는 미국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보다는 비준이 필요 없는 느슨한 형태의 총회 결정문을 선호하고 있다. 박병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총회 결정문도 각 당사국이 준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셋째는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어떤 지원을 해줄 것이냐가 관심이다.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사업과 기후변화 적응 대책에 필요한 재원을 매년 1000억 달러씩 제공할 것이냐, 민간 기업이 보유한 감축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개도국에 이전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합의가 이뤄진 뒤에도 협상 이행에 필요한 세부적인 내용을 2020년까지 계속 마련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한국은 교토의정서까지는 개도국으로 분류됐으나 이제는 경제 규모 세계 15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2013년 에너지 연소 분야 기준)여서 개도국 지위를 누릴 수 없는 처지다. 외교부 최재철 기후변화대사는 “파리 회의는 기후협상의 종착역이 아니라 기후 행동의 출발점”이라며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과거의 경험을 살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신뢰를 조성하는 교량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