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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르면 어때, 우린 우리만의 패션을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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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6 면

삼성패션디자인펀드(이하 SFDF)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신진 패션디자이너를 선정·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주고 국내외 홍보를 돕는다. 지난 11년간 총 19팀(3회까지 중복 수상 가능)이 수상했다. 파리 남성복 컬렉션을 사로잡은 ‘준지(Juun.J)’ 정욱준을 비롯해 미셸 오바마의 드레스로 화제를 모은 ‘Doo.ri’ 두리 정, 런던패션위크 공식무대에서 활동 중인 ‘Jackie JS Lee’ 이정선과 ‘Eudon Choi’ 최유돈, 국내에서 팬덤을 확보한 스티브J&요니P, ‘카이(KYE)’ 계한희 등 익숙한 이름이 많다.


올해 제 11회 SFDF의 주인공은 ‘99%IS-’의 박종우(31)와 ‘혜인 서(HYEIN SEO)’의 듀오 디자이너 서혜인(29)·이진호(30)다.


지난해에 이어 2회 연속 수상한 박종우는 펑크 패션을 만든다. 10년 전부터 짙은 스모키 화장, 입을 가리는 마스크 등 본인 스스로 독특한 비주얼을 고집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무작정 홍대 앞 인디밴드의 주무대인 ‘드럭’을 찾아가 고교 졸업 때까지 노 브레인, 크라잉 넛 등 밴드들의 공연 포스터와 옷을 만들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음악을 못해서” 펑크 패션 디자이너가 됐단다.


2008년 도쿄 드레스메이커에 입학해 재학 중인 2012년 자신의 브랜드 ‘99%IS-’를 론칭했다. “99%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싫어하는 1%의 문화가 내게는 99%를 차지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만의 옷을 만들기 위해 스터드 장식 하나까지도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고집 덕분에 전 세계 펑크 패션 매니어들은 물론 레이디 가가, 빅뱅 같은 유명 연예인도 팬으로 확보하고 있다. 매킨토시·꼼데가르송·캠퍼 등 창의력을 중시하는 브랜드들과 협업을 진행한 것도 수차례.


펑크문화를 재해석하는 그만의 ‘센’ 감각과 열정은 정말 남다르다. 올 가을겨울 옷의 컨셉트는 ‘파괴와 재조합’. 총기 사용이 가능한 괌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가 옷에 직접 총구멍을 내기도 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과 갖가지 일화 때문에 성격도 괴팍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전 성균관 부관장이셨던 박용기씨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 중인 어머니 송미헌씨의 일을 자주 도왔던 따뜻한 감성의 청년이다. “스모키 화장도 너무 선한 인상 때문에 하는 것 같다”는 게 송씨의 귀띔이다.


올해 처음 수상자가 된 서혜인·이진호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재학시절부터 함께 디자인 작업을 해온 친구사이다. 두 사람은 “전위적인 아트 패션을 기반으로 하는 학교 입장에서 보면 재기발랄하고 상업적인 디자인을 중시하는 우리는 ‘나쁜 학생’이었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서혜인의 석사 졸업 발표 의상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Fear eats the soul)’가 뉴욕의 유명 패션/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브이파일(VFiles)’의 주목을 받으며 지난해 뉴욕패션위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또 영국문화원과 영국패션협회가 신진 디자이너에게 주는 ‘2014 최고 디자이너상’도 수상했다. 리한나와 빅뱅의 지드래곤(MIV ‘삐딱하게’ 속 퍼 코트)은 혜인 서 의상의 대표 매니어.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것도 문제다. 리한나가 5월 상표 등록한 브랜드명 ‘$CHOOL KILLs’이 혜인 서 의상에 많이 쓰였던 문구라 현재 패션계에선 ‘아이디어 도용’을 놓고 말이 많다. “집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집순이’라 책과 영화를 보며 디자인 영감을 얻는다”는 서혜인은 “한 벌만 봐도 디자이너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와 글로벌 패션기업들이 함께 후원하는 ‘패션예술발전국립협회(ANDAM) 어워즈’,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보그 펀드’ 등 정부나 협회가 신인 지원을 주도해온 패션 선진국들과 달리 SFDF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11년 간 패션 부문 인재를 발굴해온 좋은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내년부터는 디자인 부문까지 수상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삼성패션디자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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