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北송금 실체] "대가성 없다" DJ정부 해명 뒤집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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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송금된 4억5천만달러는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 경제협력 대가성을 모두 갖는다."

송두환 특검팀이 25일 수사 발표에서 밝힌 대북 송금의 성격이다. 이에 따라 "정상회담 대가성이 없었다"고 항변해온 지난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다음은 특검팀이 밝힌 대북 송금의 진상이다.

"1억달러는 회담 대가성"=특검팀은 "1억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대북 지원금"이라고 규정했다. '정책'이 남북경협과 정상회담 중 어느 쪽인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정부가 지급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정상회담 대가성이 매우 짙어 보인다.

수사 결과 발표가 끝난 뒤 한 특검팀 관계자는 "1억달러는 90% 이상 정상회담 대가성"이라고 설명했다. 이 돈은 지난 정부의 도덕성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 같다.

정부 재원으로 송금할 경우 "돈으로 정상회담을 샀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 기업을 동원해 비밀송금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또 명목상 현대그룹의 경제협력 목적으로 돼 있는 3억5천만달러도 정상회담 전까지 모두 보내기로 북한 측과 약속한 점 등을 들어 회담 대가 성격도 포함된 것으로 판단했다.

99년부터 회담 추진=98년부터 대북사업을 추진해 오던 현대그룹은 99년 말 대북사업의 정상적 추진을 위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 필요하다고 판단, 남북 정상의 만남을 추진했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정몽헌 회장은 2000년 초 북측의 정상회담 수용 의사를 확인,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이를 전달했고,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朴씨를 특사로 임명했다.

2000년 3월 8일 남북 특사가 접촉한 이후 4월 8일 정상회담 개최를 최종 합의하는 과정에서 현대 측은 북한으로부터 포괄적인 경제협력사업권을 얻는 대가로 현금 3억5천만달러를 정상회담 개최 전까지 지급키로 약속했다.

현대 돈과는 별도로 정부는 1억달러의 현금을 북한에 지원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약속'에 부담을 느낀 朴씨는 5월 중순 鄭회장에게 1억달러를 대신 지급해줄 것을 부탁했고 鄭회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송금 부담 세 회사에 분산=鄭회장은 북한에 보낼 4억5천만달러를 세 덩어리로 나눴다.

현대상선이 2억달러, 현대건설이 1억5천만달러, 현대전자가 1억달러를 각각 맡았다.

朴씨 등은 현대가 송금할 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산업은행에 사실상의 대출 압력을 행사했다. 朴씨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대출 요청 등으로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와 박상배 영업1본부장은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대출했다.

2억8천만달러 송금 지연= 현대상선은 대출금 중 2천2백35억원을 2000년 6월 9일 국가정보원 측에 건넸고 국정원은 외환은행 측에 환전을 의뢰해 2억달러를 만든 뒤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3개의 북한 계좌에 분산 입금했다. 그러나 바로 공휴일이 끼여 해당 은행이 쉬면서 실제 입금은 12일 이뤄졌다.

현대건설은 기업어음 매각 대금과 공사 대금 등으로 1억5천만달러를 마련한 뒤 싱가포르지사를 거쳐 북한 계좌에 송금했다. 나머지 5천만달러는 현대건설 런던지사를 경유 북측 예금계좌에 넣었다. 현대전자는 2천만달러와 8천만달러 두개로 나눠 각각 2000년 6월 9일과 12일에 오스트리아와 싱가포르의 북한계 예금계좌에 입금시켰다.

전진배 기자 <allonsy@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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