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예술의 독창성을 보았다"|「한국미술5천년」 유럽전을 끝내고|전시 주관한 「괴퍼」교수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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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3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시작된 「한국미술5천년」 유럽전시가13일 서독 쾰른의 동양미술관 전시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런던, 서독의 함부르크와 쾰른 등 3개 도시에서 3개월씩 열렸던 이 전시회는 15만 명이 관람했다. 서독에서는 2만부 인쇄된 캐덜로그가 1만7천부나 팔렸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국문화가 유럽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이행사롤 주관했던 쾰른동양미술관 관장「로거·괴퍼」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알아본다.<편집자주>
필른 동양미술관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한국미술전을 유럽에서 실현시키려고 주도적으로 노력해 왔다. 우리 미술관으로서는 이 한국미술전이 지난 20년간에 걸친 한국예술과 문화연구의 결정이었다. 이번 전시기간 중 나는 여러 계층의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느꼈느냐』 고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반응은 「놀라움」 바로 그것이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미술품들이 전시됐던 것이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보도매체를 통해 한국의 정치·경제정세 등 한국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접하기는 했겠지만 그런 정보들을 직접 체득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시각을 통해 여과되거나 굴절된 것이었다.
거의 모든 관람객들이 한국민족의 특성을 직접 표현하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국국보전은 이런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국문화의 특징과 고유성을 인식시키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관람객들이 놀라와했던 것은 한국미술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그 독창성이 두드러지다는 점이었다.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과 무난함이 그런 특징이었다.
특히 관람객들은 다른 동아시아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샤머니즘적인 요소들을 볼 수 있었고 통일신라시대의 불상들은 특히 큰 인상을 남겼다.
대체적으로 일반적민 도자기 전시회가 극히 소수계층의 특수한 관심밖에 끌지 못하는데 비해 고려청자는 모든 관람객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관람객들은 신라시대의 금미술품과 고려청자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들은 진열대 앞에서 한국미술의 독창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높은 수준과 다양성에 놀라와했다.
그에 비해 불교미술과 조선시대의 회화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되는 탓인지 설명을 듣거나 캐털로그를 보고 나서야 한국적인 성격을 좀더 분명히 이해했다.
그들은 전시품들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미술에서 느끼지 못했던 두 가지 특징으로 생동감과 분방함을 느꼈다고 대부분 말했다.
안내나 설명을 맡은 전시장의 전문요원들은 우리의 서구문화와 비교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인쇄술이라든가 도자기 등 여러 문명분야에서 한국이 유럽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대부분의 관람객들에게는 여러 세기에 걸쳐 팽배해 있던 유럽중심주의, 서구가 문화적으로 절대 우월하다는 관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관람객들이 대화를 통해 동아시아 3개국의 상호문화관계를 분명히 알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성과였다.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문화가 한국에서 신속하게 소화돼 완전히 한국화된 사실을 우리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또 일본문화에 대한 한국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잘 보여주었다. 많은 관람객들은 이런 사실에 매우 놀라와했다.
이런 면에서는 앞으로 동아시아에서나 서구에서 판에 박은 고정관념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선입감이나 민족주의에서 오는 모든 부문에서의 관념적인 위험에서 벗어나 사실에 바탕을 두고 냉철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번 미술전은 비단 관람객들을 깨우쳐 주었을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 공부하는 학자들에게도 많은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관람객들과의 대화, 파견된 한국전문가들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우리학자들에게 제기해주었다.
예를 들어 한국미술에서 한국고유의 특성을 어떻게 찾아내 명확하게 정리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들 앞에 놓인 흥미 있는 과제다.
한국의 많은 박물관과 소장가들이 유럽으로 미술품을 보내면서 치른 희생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15만 명의 유럽인들이 한국문화의 높은 수준을 알고 찬탄할 수 있을 만큼 눈을 뜨게되고 아울러 정치·경제적인 문제들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상호연관 속에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의 약력
▲25년생 ▲중국학과 일본학 전공 ▲66년이래 쾰른 동양미술관장 겸 쾰른대학 교수(동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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