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세요] 제주에서 11년째…"음악과 노동의 기쁨 느끼며 살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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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제주시 협재리의 한 카페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연 가수 장필순이 반려견 ‘까뮈’를 안고 최근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성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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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당시의 장필순. [중앙포토]

제주시 서쪽에 위치한 애월읍은 요즘 제주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해변이 아름다운 곳, 유명 연예인들이 내려와 사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제주의 비벌리힐스’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22일 애월읍의 한 마을인 소길리를 찾았다. 뭍의 시끄러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길리는 고요하기만 했다. 바람에 이는 억새의 속삭임, 노랗게 여문 감귤을 향한 아지망(‘아주머니’의 제주방언)들의 잰걸음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적막함에 미소 짓게 되는 곳, 소길리. 이곳에 11년째 터를 잡고 사는 육지사람이 있다. 바로 가수 장필순(52)이다.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가수 장필순
너무 빨리 변하는 대중음악 싫어
2005년에 내려와 5년간 음악 끊어
제주 이웃들과 소통하며 감사 배워
올해부터 디지털 음원 발표나서
카페 콘서트 앞으로 자주 열 것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루에 버스 2~3대 다니는 시골마을이었죠. 몇 년 새 건물도 들어서고 집도 많아졌어요. 들고 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겨야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제주 살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장필순은 2005년 7월에 입도했다. 제주를 워낙 좋아해 예전부터 자주 여행을 다녔단다. 처음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곳도 제주였다. 1982년, ‘소리두울’이라는 그룹으로 데뷔,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등을 발표하며 ‘한국 포크음악의 대모’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불렸던 그가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갑작스레 제주로 내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이라는 게 자기만족만으로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당시엔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고 너무 빠르게 변하는 대중음악 시장에 회의를 느꼈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해도 즐겁지 않았죠.”

 제주에서 처음 3년 동안은 두문불출했다. 음악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대신 농사일에 빠져들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구한 덕에 텃밭을 가꾸며 노동의 기쁨을 실컷 맛봤다. 원체 조용히 지내는 성격이라 이웃과 교류도 하지 않았는데, 3년 정도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동네 꼬마부터 할머니까지 친구가 많아졌고, 어느새 동네 주민들과의 수다가 즐거워졌다.

 “자고 일어나 나가면 대문 앞에 양배추나 브로콜리 같은 게 쌓여있어요. 어르신들이 주고 가신 거죠. 평생 농사 지으며 허리 펼 새 없이 자식 뒷바라지하는 이곳 어른들을 보면서 ‘감사’라는 걸 배운 것 같아요.”

 제주에 올 때만 해도 불만이 많았다. 세상에, 음악에…. 5년 동안 음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 넘게 제주에 살다 보니 이젠 매사에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단다. 장씨는 “제주에 와서 잃은 것도 많지만, 소중한 것을 더 많이 얻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얻은 그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 2년 전 정규앨범을 냈고, 올해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왔던 자신의 곡들을 새롭게 편곡한 ‘soony rework’시리즈와 제주에서 받은 영감을 노래로 만든 ‘소길 화花’시리즈를 디지털 음원으로 발표하고 있다.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얼마 전엔 협재리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소규모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제대로 홍보하지도 않았는데 알음알음으로 찾아 온 지역주민들로 카페가 꽉 찼다. 장필순은 “그렇게 호응이 좋을 줄 몰랐다”며 “앞으로 더 자주 공연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제주에는 아직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요. 공연 보고 싶어도 못 보는 분들이 많죠. 제주에 사는 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함께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제주=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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