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지, '도리화가'에서 만개한 연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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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배수지(21)가 영화 '도리화가'에서 만개했다.

배수지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도리화가'에서 실존인물인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을 연기했다. 극 중반까지 숯 검댕이 분장을 하거나 상투를 틀고 남장을 한 모습 뿐이다. 전작 '건축학개론' 때 연기한 '국민 첫사랑'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역할을 연기한 셈. 물론, 어떤 분장을 해도 미모는 숨길 수 없지만, 확실히 이번 작품에선 '수지의 미모' 보단 연기가 더욱 돋보인다. 감정 연기와 판소리 신은 꽤 근사하게 완성했다. 먹먹하고 애틋한 느낌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의 연기가 만족스러웠는지 이종필 감독은 유난히 클로즈업 신을 많이 넣었다. 눈빛부터 얼굴 근육의 작은 떨림까지 다 보이는 클로즈업 신이 많다는 건 감독이 배우의 연기에 마음이 들었다는 의미다.

심청가, 춘향가 등 판소리를 부르는 장면에선 미쓰에이로 활동하며 선보인 노래와는 또 다른 힘 있는 목소리를 내지른다. 후반부에선 미세한 쇳 소리를 내는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 90%이상 판소리도 직접 했다. 배수지는 "배운 게 정말 많은 작품이에요. 스승님(류승룡)을 만나 (연기)집중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한 발자국이라도 성장한 느낌"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도리화가'를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읽고 하고 싶었다. 가슴 속에 뭔가 뜨거운 게 느껴졌다."

-완성된 영화를 먼저 본 소감은.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만족스럽다. 초반에 얼굴이 많이 부은 게 좀 아쉽다. (웃음) 초반에 소리를 하는 장면도 너무 미숙한 게 보여서 아쉬웠다. 영화 촬영을 거의 (스토리) 순서대로 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소리가 조금씩 늘었는데 그렇다보니 초반에 미숙한 게 더 티가 나더라."

-눈썹도 그리지 않고 얼굴에 숯 칠만 한 것 같던데.
"눈썹은 아주 희미하게 그리긴 했는데 얼굴에 하도 까맣게 숯 칠을 해서 눈썹을 그린 게 티가 안 났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얼굴에 뾰루지가 난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그냥 뾰루지가 난 대로 (가리지 않고) 찍었다."

-'건축학개론'때와는 180도 다른 비주얼이다.
"예쁘게 나오지 않을 건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예쁘게 나오지 않더라도 순박하고 순수한 진채선의 모습으로 나온 것 같아서 아주 만족하고 있다.(웃음)"

-스승 신재효 역의 류승룡과의 연기는 어땠나.
"연기할 때 많이 배려해주셔서 든든했다. 감정 이입이 엄청 잘 되더라. 다른 작품 보다 조금 더, 한 발자국이라도 성장한 느낌이다. 배운 게 많았다. 스승님 덕분에 집중도 잘 됐고, 도움이 많이 됐다. 스승님은 연기할 때 뭔가 눈빛으로 다독여주는 것 같다. 눈빛으로 '그래, 그게 맞아. 잘했어'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 같았다. 에너지가 달랐다. 스승님 대본을 보고 반성도 많이 했다. 대본이 걸레더라. 뭐가 이것 저것 많이 적혀있었다. 나도 뭔가 쓰긴 했는데 내 대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본 흔적이 있었다. 선배님은 '맛집 리스트 적은 거야'라고 농담을 하셨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단하신 것 같다. 그래서 현장에서도 스승님이라고 불렀고, 휴대전화에도 신재효라고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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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류승룡의 작품을 많이 봤나.
"물론이다. '7번방의 선물'은 극장에서 3번이나 봤다. '내 아내의 모든 것도' 봤다. 류승룡 선배님이 출연한 작품은 같이 선배님이 연기한 캐릭터에 집중해서 봐서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못 해봤다. 같이 해서 영광이다."

-가수로 노래를 부를 때와 판소리는 발성이 전혀 다르다. 어떻게 준비했나.
"완전 다르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은데 판소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많이 됐다.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이니깐 정말 잘해야되지 않나. 잘 해야돼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이 캐릭터의 매력에 이미 빠진 상태였고 꼭 하고 싶어서 도전했다. 가수 발성이랑 달라서 처음엔 '멘붕'이었다. 발성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연습해서 초반엔 목도 많이 상했다. 연습을 하면서 익숙해졌다.

아직도 (판소리) 선생님에 비하면 발 끝도 따라가지 못 할 실력이지만, 초반에 비해 조금은 늘었다. 영화 속 채선이가 성장하듯이 그렇게 성장한 것 같다. 1년 동안 꾸준히 판소리 레슨을 받았고, 선생님 스케줄과 내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수업을 받지 못 할 땐 이전 수업시간에 녹음한 1~2시간 분량의 음성파일을 들을면서 연습했다."

-물 속에 빠졌다가 나오는 장면이 아쉽게 편집됐다.
"물에 뛰어드는 장면만 나왔더라. '어푸'하면서 나오는 장면은 삭제하셨더라. 그게 겨울이었고 추운데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몇 시간 반복해야해서 발목이 잘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들게 찍은 장면이 많았을 것 같다.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장면은 폭우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었다. 10시간 정도 소리를 계속 '아~'하고 질러야하는데 나중엔 머리가 아팠다. 피가 거꾸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물구나무 서기를 오래한 느낌이랄까. 가짜로 소리를 지르면 연기할 때 티가 자고, 인상이 덜 찌푸려져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정신적으로 힘든 건 스승님한테 너름새(판소리에서 연기)를 할 때 감정 못 잡고 실실 웃다가 혼나는 장면이었다. 감정을 어떻게 잡아야하는지 많이 고민했던 장면이다."

-판소리를 배운 게 가수 활동에도 도움이 될까.
"그런 것 같다. 솔직히 난 차이를 못 느꼈는데 영화 촬영 후 미쓰에이 녹음을 할 때 주변에서 노래부르는 게 달라졌다고 하더라. 박진영 피디님이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난 공기에 가까운 소리를 냈었다. 반면 판소리는 소리가 더 많이 들어간다. 판소리를 배우고 녹음을 하는데 작곡가님이 공기가 조금 더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판소리를 배우기 전엔 피디님이 항상 '공기를 줄이고 소리를 조금 만 더 내봐'라고 하셨다. 이번처럼 공기를 더 넣으라는 디렉션은 처음 들었다. 뭔가 달라졌나."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실제 스승이자 소속사 대표인 박진영 프로듀서가 생각나지 않았나.
"(웃음) 전혀…. 하하하하. 피디님도 정말 좋은, 존경하는 스승님이다. 노래, 춤은 기본이고, 마음 가짐이나 건강까지 챙겨주고 알려주는 분이다. 소속사 사장님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챙겨준다. 인간적이라고 해야하나. 동시에 독특한 캐릭터다. 무대에 서는 모습과 평소 운동을 하면서 자기 관리를 하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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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이후 '국민 첫사랑'으로 불린다.
"좋은 수식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넘어서야하는 게 된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선 또 다른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도리화가'를 하면 어떤 수식어가 붙을지 혼자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없더라.(웃음) '국민 얼쑤'나 '국민 소리꾼'은 이상하지 않나.(웃음) "

-진채선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 사랑의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배우 수지는 사랑의 감정을 알지 않나.
"채선이 분장을 하고 나면 걸음걸이나 말투, 생각이 달라진다. 순박해지면서 몰입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하는지를 막 연구하기 보다는 그냥 그 상황에 녹아들어서 연기한 것 같다."

-클로즈업 신이 많았다.
"부담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클로즈업이 좋다. 중요한 신이 잘 드러나서 좋다. 감정이 잘 보여질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클로즈업이 좋았다."

-'도리화가'를 찍은 뒤 연기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도리화가'는 내게 정말 소중한 작품이다.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서 감사했고, 진실되게 촬영에 임했다. 소리를 하지만, 사실 그 속에 채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게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

-실제 모습도 성숙해진 것 같다.
"평소엔 안 그렇다. 아직도 내 안엔 장난기가 흘러넘친다. 하지만 겉으로 젖살도 빠지고 그러면서 외형적으로 예전보다 성숙해진 것 같다."

-차기작은 드라마로 정했다. KBS 2TV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김우빈과 연기한다. 남자친구 이민호의 조언은 없었나.
"얘기는 뭐 아직 없었다. 드라마 촬영을 아직 시작 안 해서…. 드라마 준비는 이제 조금씩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피디 역을 맡았다. 많은 일을 겪고 현실에 찌든, 강자에게 한 없이 약한 캐릭터를 맡았다."

-최근 가수 보단 배우 활동에 전념하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만나서 자꾸 (연기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배우와 가수 활동 중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게 다 하고 싶다. 욕심일 수 있지만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이니깐. 천천히 다 병행하면서 해보고 싶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 사진=박세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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