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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빚에 허덕이는 노인이 많은 나라는 행복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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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노인의 빚 부담이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어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주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1%에 달해 전 연령대 평균(128%)을 크게 웃돌았다. 퇴직 등으로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환갑 이후에 부채 상환 부담이 오히려 더 커진다는 얘기다. 이들의 부채 상환 능력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 전체 소득에서 연금 같은 안정적 수입원의 비중이 29%에 불과해 70% 넘는 독일·네덜란드나 미국(39%)보다 크게 낮다. 경기가 어려워져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을 접을 경우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고령층 부채는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다. 미국과 유럽에선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 40대 이후 갚아나간다. 이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자산이 많아지고 빚은 줄어든다.

하지만 한국에선 ‘부채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2004년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었던 세대는 40대 가구주였다. 2014년엔 50대가 이 자리를 차지했다. 베이비부머의 중심인 이들이 주택 마련과 자녀 교육비, 결혼 지원에 매달리느라 10년간 빚을 줄이지 못하고 살았던 셈이다. 이들의 퇴직과 은퇴가 본격화하는 앞으로 10년간 ‘고령층 부채’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취직 및 결혼연령이 갈수록 늦춰지는 20~30대 역시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빚에 허덕이는 노인이 많은 나라는 행복할 수 없다. 당사자는 물론 채무 불이행 위험에 노출되는 금융권과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부담도 커진다. 가계부채의 구조적 악화를 막을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많은 일시 상환 부채 구조를 분할상환으로 바꾸고 주택연금과 역모기지를 활성화하는 데 정부와 금융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 ‘부채의 고령화’를 막을 근본 대책인 출산장려와 청년일자리 창출, 교육비 부담 경감에 박차를 가해야 함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