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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살률 최고인데 우울증 약 복용은 꼴찌 수준이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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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살률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이 우울증 치료제 복용은 가장 낮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항우울제 소비량(2013년 기준)은 28개 조사 대상국 중 칠레 다음으로 낮았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OECD에서 가장 높다. 지난해 27.3명으로 OECD 평균(12명)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10~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성적·입시·취업으로 이어지는 무한경쟁의 터널에서 많은 젊은이가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고통받다 심하면 죽음에 이르고 있다. 최근엔 조기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50~59세)의 우울증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불린다. 빨리 치료하면 쉽게 낫지만 방치하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15% 정도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감기를 가볍게 생각했다 폐렴으로 악화돼 숨질 수 있는 것처럼 그대로 놔두면 치명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에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스스로 숨기고 술 등에 의존해 푸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우울증의 90%는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우울증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쉽게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의 하나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건강검진에서 가장 꼼꼼하게 체크해야 할 항목도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건강이다. 검진에서 발견해 조기치료를 받는다면 자살률도 상당히 낮아질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엔 우울증이 질병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살률이 높은 한국은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핀란드는 2009년부터 우울증 방지 등 정신건강을 위한 ‘정신(Mieli) 2009’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대한 실태조사, 진단, 상담, 교육, 치료 등 종합 관리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