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손 뿌리친 아들, 1년 뒤 자폭조끼 터뜨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기사 이미지

이번 파리 테러를 자행한 범인들은 평범하게 살다가 이슬람 급진주의에 투신해 지하디스트로 변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포섭된 이들은 시리아에서 훈련을 받은 뒤 본국으로 돌아와 범행을 계획했다.

IS가 유럽에 파견한 ‘이맘’
실직자 아미무르 시리아로 꾀어
국경 넘어 찾아온 아버지도 외면
파리 극장테러 … 주검으로 돌아와
서구 무슬림 가난·차별 파고들어
‘이맘’ 이슬람 극단주의 전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바타클랑 극장에서 자살폭탄을 터트린 사미 아미무르(28)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 북동부 외곽 드랑시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알제리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란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인근 도시 블랑 메스니의 모스크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자 ‘이맘(visiting imam·이슬람 성직자)’을 만나면서부터다. 이후 버스 회사를 퇴사한 아미무르는 2013년 9월 시리아로 넘어가 테러단체에 가담했다.

 지난해 6월 아버지 무함마드(67)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터키 남부 가지안테프 국경을 넘어 시리아 알레포로 향했다. 귀국길에는 아들 손을 잡고 함께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9개월 만에 재회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냉랭했다. 무함마드는 귀국 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IS 대원이 우리의 만남에 내내 배석했다”며 “아들은 자신이 전투에 참여했는지도, 어쩌다 부상을 입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했다”고 회고했다. 프랑스에 있는 아내가 아들을 설득하기 위해 쓴 편지와 편지 봉투 속 100유로를 건넸다. 그러나 편지를 읽은 아들은 “돈은 필요하지 않다”며 거절했다. 1년5개월간 연락이 두절됐던 아들은 13일(현지시간) 자폭테러 후 주검으로 부모 품에 돌아왔다.

 볼테르가에서 자폭테러를 일으킨 이브라힘 압데슬람(31)과 살라 압데슬람(26) 형제는 프랑스 국적이지만 벨기에 몰렌베이크에서 줄곧 살았다. 형 이브라힘은 최근까지 몰렌베이크에서 주점을, 동생 살라 압데슬람은 트램(노면전차) 기술자로 일했다. 삼 형제 중 막내인 무함마드 압데슬람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두 형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며 “부모님이 이번 비극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테러를 총지휘한 압델하미드 아바우드(27)는 벨기에 브뤼셀의 최고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경범죄에 휘말리던 아바우드는 지난해 시리아로 건너가 IS에 가담했다. 가족들은 “아바우드가 어린 시절 종교에 심취한 모습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수배 중인 아바우드는 유럽 내 IS 조직을 관리하면서 시리아 IS 본부와 접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IS 최고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4)가 그에게 이번 파리 테러를 직접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파리 테러 발생 하루 전인 12일(현지시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IS 대원 무함마드 엠와지 역시 영국 런던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정부가 이슬람교도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한다”며 급진주의자로 전향했다. ‘지하디 존’으로 불린 엠와지는 검은 복면 차림으로 IS가 외국인 인질을 참수하는 영상에 줄곧 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서구 사회의 빈부격차와 이민자 차별을 겪은 ‘외로운 늑대’들은 테러단체의 최우선 포섭 대상이다. IS는 전과나 빈곤으로 인해 사회 적응이 어려운 청년들의 불만을 교묘히 파고든다. IS 대원인 아부 살만은 로이터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여행 갔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인 ‘와하비즘’에 빠졌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IS의 “서구 열강 식민지하에서 비롯된 세속주의를 배격하자”는 주장에 감화돼 시리아로 넘어갔다. 살만은 “시리아·리비아 등 IS의 심장으로 오면 누구든지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IS가 급진 이슬람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파견한 ‘이맘’은 서구화된 젊은이들을 빠른 속도로 세뇌시킨다. 바타클랑 극장에서 자폭해 숨진 테러범 이스마일 오마르 모스테파이(29)가 다니던 모스크 관계자는 “모스테파이는 IS가 직접 파견한 ‘이맘’에 의해 급진주의에 물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알제리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모스테파이는 다섯 살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2013년 말 가족을 버리고 시리아로 건너가 IS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

 IS 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군사·정치·종교 등 세 분야의 교육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 IS에 대한 충성도와 전투 능력에 따라 훈련 기간(2주·30일·45일·6개월·1년)도 달라진다. 포로들을 참수하는 장면을 견학한 다음 직접 처형을 집행하기도 한다. 최근 열 살 남짓한 소년 IS 대원이 직접 러시아 남성 2명을 총으로 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대원들은 훈련이 끝난 뒤 전투병·자폭테러범·SNS선전병으로 현장에 즉각 투입된다. 의사나 엔지니어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살려서 활동하기도 한다. 미성년자 대원은 넉 달간의 신앙 집중 교육을 수료해 급진 지하디스트로 양성된다. IS가 올해 발간한 청소년 대원 양성을 위한 가이드북 ‘지하드 자매의 역할’에는 “총싸움과 전투를 위한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도록 장려하자”고 나와 있다.

 지난 5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처음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회의 의제로 올렸다. “IS와 알카에다 등 무장단체에 가담하는 외국인은 100여 개국 2만5000명, 비공식적으로는 3만 명이 넘는다”며 “시리아와 이라크는 극단주의자들의 양성소가 됐다”는 것이다.

안보리는 “외국인 대원들이 본국 혹은 제3국으로 돌아가면서 국제 안보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