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외우기 힘든 건 화이트보드에 적고 매일 눈에 익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서울 현대고 2학년 정성욱군

기사 이미지

정성욱군이 자기 방 책상에서 영어 지문을 외우고 있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정군은 독서실이나 자율학습실보다 시야가 트인 책상이 있는 집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한다.

수업 듣고 복습, 빤하지만 최고의 비결
암기과목 10번 반복, 시험 전 통째 암기
화이트보드 ‘오늘의 계획’ 쓰고 꼭 실천

염일방일(拈一放一). 현대고 2학년 정성욱군의 좌우명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1 때 외할아버지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해준 말이 그대로 좌우명이 됐다. 그는 방 한쪽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이를 적어놓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집중이 안 되거나 잡생각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서울대 의대 진학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컴퓨터 게임이나 TV 시청과 같은 작은 욕망을 절제하게 된 거다.

서울대 간 누나에게 자극 받고 집중

기사 이미지

방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 시험 끝났을 때 영화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정군도 중학교 때부터 최상위권이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 졸업 당시에는 전교 11%였다. 등수로 치면 전교 20등, 반에서 3등 정도다. 하지만 이후 고등학교에 올라와 치른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 그것도 전교 내신 상위 50% 이내 학생이 모인 자율형사립고에서 말이다. 비결을 묻자 그는 “수업 시간에 집중해 듣고, 매일 꾸준히 복습한 게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대부분 모범생이 말하는 우수한 성적을 받는 바로 그 방법이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이 두 가지를 실천한 덕분에 전교 1등을 했다.

 사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평소 좋아하는 과목인 수학과 과학만 열심히 했다. 나머지 과목은 시험 대비에 소홀한 것은 물론 수업 시간에도 엎드려 자기 일쑤였다. 기술가정이나 국사 같은 과목은 물론 국어 등 주요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또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우르르 몰려가 게임을 하거나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전환점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찾아왔다. 세 살 터울 누나가 서울대에 합격한 게 그에게 자극이 됐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이후부터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법을 찾아 나섰다. 현대고를 졸업한 누나에게 공부법이나 내신 시험 대비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누나 말에 그는 스스로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봤다. 말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졸면서 보냈던 정군이지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절대로 졸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이 다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졸음이 오려고 하면 교실 뒤에 있는 스탠드 책상에서 서서 수업을 듣거나 ‘여기서 질 수 없다’는 정신력을 버텼다.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은 물론, 대부분 학생이 엎드려 자는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돼 웬만하면 잠이 쏟아지지도 않는다. 그는 “수업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는 빤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는 공부법을 따라 하기 전에 기본부터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 없는 영어·한국사 매일 꾸준히 공략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공부 시간도 대폭 늘렸다. 수학·과학보다 중학교 때부터 싫어하고 자신 없었던 한국사·영어 공부에 매일 1~2시간씩 투자한다. 특히 한국사는 그가 수능을 치르는 2017학년도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사와 영어 공부법도 특별한 건 없다. 매일 복습하고 시험 전에 통째로 암기하는 게 전부다. 한국사는 내신 시험 대비 기간 한 달 동안 10번 정도 반복해 본다. 처음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머리에도 남는 게 별로 없지만 두세 번 반복하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100쪽을 공부하는데 3일 이상 걸렸지만, 시험 일주일 전에는 3~4시간 동안 국사 한 과목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도 단축됐다.

기사 이미지

영어 공부할 때는 중요한 단어나 문장을 쓰면서 암기한다.

 영어 과목도 지문을 외우는 데 집중한다. 누나의 조언에 따라 시작한 방법이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영어 지문을 암기하고 시험을 치른 적이 없었다. “지문만 완벽하게 공부하면 100점 맞을 수 있다”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1단계로 지문을 분석한 후에 2단계로 암기한다.

 지문을 분석하면서 읽을 때는 문장 형식과 접속사 등을 파악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 정리한다. 이후에 문장이 어느 정도 눈에 익으면 본격적으로 암기한다. 두꺼운 공책을 옆에 펴놓고 중요한 단어를 손으로 쓰면서 외운다. 사람 이름이나 숫자가 나열된 문장이나 중요한 문법요소가 없는 건 제외한다. 지문을 완벽하게 외우니 시험문제를 풀 때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빈칸을 채워 넣는 서술형 문제도 보자마자 답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영어 시험 성적은 100점이었다. 그는 “중학교 내내 발목을 잡았던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뿌듯했다”며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말했다.

 화학 과목도 어려운 단원부터 공략했다. 계산 문제가 출제되는 ‘화학반응식’과 ‘산·염기 중화반응’ 단원이 골칫거리였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5년 치 수능과 모의고사 기출문제에서 관련 문제를 골라 풀었다. 혼자 힘으로 이해가 안 될 때는 학교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해설지에 나온 설명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이제는 웬만한 문제는 해결할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어려서부터 워낙 좋아했던 수학 과목은 특별히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않는다. 대신 철저히 지키는 원칙이 있다. 해답지를 절대 보지 않는 거다. 고난도 문제는 친구에게 SOS를 보낸다. 친구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고, 함께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풀이 방법이 보일 때도 있다. 그는 “결론만 나와 있는 답지와 달리 여러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서 좋다”며 “친구와 함께 해결한 문제는 기억에도 더 오래 남아 있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화이트보드에 매일 계획을 세운 후 공부를 시작한다.

교사별 출제 성향 파악해 맞춤 학습

좋은 성적을 받는 비결은 또 있다. 교사별로 출제 경향을 파악하는 거다. 예컨대 국어나 물리 과목은 교과서나 부교재에서만 문제가 나오고, 한국사는 책에 없어도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이 시험에 나온다는 걸 파악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그는 “첫 중간고사를 치르면 대충 감이 온다”며 “학교 선배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매일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집에서 자율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화이트보드에 그날 공부할 내용을 적는다. ‘오후 6~8시 한국사 복습’ ‘오후 8~9시 수학 문제 풀기’ ‘오후 9~11시 영어 지문 암기’와 같은 식이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계획을 적어놓고 실행하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스스로 자제하게 됐다”며 “계획이 없으면 4~5시간 TV 보고 쉴 수 있지만 한국사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안 돼 잠깐 쉬어도 8시부터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고 말했다.

 화이트보드 용도는 이뿐 아니다. 잘 안 외워지는 내용을 적어놓고 매일 눈에 익힌다. 지난 중간고사 때는 사이시옷이 들어간 단어들을 죽 적어놓고 책가방을 싸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침대에 누워 쉴 때마다 틈틈이 봤다. 텃마당·윗머리·잇몸 등 40여 개가 넘는다.

 정군의 방에는 화이트보드가 있는 것 외에 또 조금 특이한 게 있다. 바로 책상이다. 일반 학생보다 1.5배 정도 더 크고 책장이 없는 책상을 사용한다. 또 방 한가운데 놓여 있어 앞과 옆이 모두 뚫려 있다. 집중력을 높이려고 집에서도 독서실 책상을 구매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군은 반대다. 사방이 트여있어야 집중이 더 잘된단다. 그는 "학교 자율학습실보다 집에서 공부할 때 학습 효율이 훨씬 높다”며 “다른 사람이 좋다는 걸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