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인형이 스마트폰 대신할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인공지능의 발달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고도 뭐든지 가능한 시대 다가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1980년대 미국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피위의 장난감 집’은 스마트폰조차 구식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첨단 기술을 보여줬다. 그 장난감 집에선 똑똑한 의자·바닥·시계·지구본·장난감과 엉뚱한 이족보행 로봇이 대화를 나눈다.

5년 정도만 지나면 우리 가정은 모든 가구가 지능을 갖춘 피위의 원룸처럼 될지도 모른다. 이를 실제로 구현할 인공지능 기술은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마존·구글·애플부터 심지어 바비 인형 제조업체까지 인공지능 개발에 한창이다. 이들은 집안의 온갖 물건들이 감정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드라마 ‘전격 Z작전’의 자동차나 영화 ‘그녀’의 운영체제, 아니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찻잔 세트 등 뭐든 원하는 것을 골라보라. 이 기술은 칩으로 구현되는 스마트홈을 한참 넘어선다. 우리 주위의 사물을 집사나 보더콜리처럼 만들어 준다.

애플의 인공지능 ‘시리’를 개발한 비브랩스 설립자 대그 킷라우스는 “지능은 이제 도구가 된다”고 미국 IT전문지 와이어드에 말했다. “만약 우리가 온갖 사물과 대화할 수 있고, 그 사물들이 우리를 알아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속속들이 알아서 처리해준다면 멋지지 않겠는가?”

이 기술은 스마트폰을 밀어낼 조짐이다. 만약 우리 주변의 모든 기기들이 서로 연결돼 자동으로 반응한다면 굳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이유가 없어진다. 음식 주문·음악 재생·친구 안부 확인 등 우리가 원하는 모든 기능이 조명기기에 탑재돼 말만 해도 처리된다면 손가락으로 수많은 앱들을 눌러야 할 필요도 없다. 이런 집사 형식의 인공지능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소설에서 파산 과정을 묘사할 때 썼던 표현처럼 ‘조금씩, 그러다가 갑자기’ 스마트폰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이런 기술이 어느 정도 구현된 제품은 시중에 나와 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개발된 인공지능 서비스 시리·구글 나우가 한단계 진화한 형태다. 올해 아마존은 에코라는 인공지능 기기를 출시했다. 시리와 유사한 소프트웨어 ‘알렉사’를 탑재했고 와이파이를 지원한다. 집에 놓아두면 항상 주인의 요구사항을 듣고 처리한다. 이를테면 요리하느라 손이 기름범벅일 때 이렇게 외치면 된다. “알렉사, 와인 사오는 걸 깜빡 했어! 늘 마시던 걸로 두 병 주문해.” 그러면 에코가 그 말대로 해준다. 스마트폰을 꺼낼 필요는 없다.

스타트업 큐빅이 내놓은 제품도 에코와 비슷하다. 원통 모양인 에코와 달리 정육면체인 점만 빼면 말이다. 보다 친근해 보이는 제품을 원한다며 지보가 적격이다. 에코나 큐빅과 흡사하지만 지보엔 눈 비슷한 것이 달려 있어 이용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픽사의 애니메이션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아주 귀엽다. 지보는 11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또 이번 크리스마스엔 자녀들에게 픽사 출신 기술자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인형 헬로 바비를 사줄 수도 있다. 헬로 바비는 우리 자녀를 알아보고 친구가 될 것이다. 해킹 가능성은 없을까? 어쩌면 어느날 인형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자, 지금부터 엄마 신용카드를 가져와서…”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은 모두 친절하고 유용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투자한다. 지난 9월엔 중국 인터넷 대기업 바이두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한 스타트업 비브랩스에선 시리를 개발해 애플에 판매한 개발자 다수가 일한다.

이런 업체들은 친절하고 유용하며 직관적인 인격을 갖춘 인공지능 개발을 추구한다. “이용자들은 마치 기계가 아니라 진짜 사람과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큐빅의 CEO 유리 버로프는 잡지 패스트컴퍼니에 말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이미 인터넷 이용자를 잘 아는 업체에 알맞는 방향이다. 소프트웨어가 페이스북 활동을 분석해 이용자의 성격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만약 누군가가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구글은 그 사람의 일상 정보를 아주 자세한 수준까지 갖게 된다. 여기에 세련된 인공지능과 훌륭한 음성인식 기술, 인간 감정 연구에 기반한 소프트웨어를 더하면 이용자와 이용자의 상황·수요·욕구를 이해하는 기술을 만들기란 어렵지 않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장기적으로 자사 기술을 곳곳에 퍼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아마존은 외부 개발자들이 알렉사를 다른 기기에 심어놓도록 허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비브랩스도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이 여러 제품에 이용되도록 권장하는 라이센싱 전략을 도입했다. 큐빅이나 지보 같은 기기 제조업체들 역시 똑똑하다면 같은 방식을 택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친절한 인공지능이 스마트TV·스마트 자동차·스마트 변기로 퍼져나간다.

아무리 널리 이용되는 기술일지라도 결국은 밀려나기 마련이다. 대형 컴퓨터는 PC에, PC는 스마트폰에 왕좌를 내줬다. 스마트폰이 오랜 기간 대세를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른 기술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 기술은 바로 인공지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든 첨단 기술이 다 그렇듯이 인공지능에도 사생활 보호나 보안 등 극복할 과제가 산적했다. 앞으로도 여러 난관에 마주치고 심각한 문제도 발생하겠지만, 그런 문제가 친절한 인공지능의 등장을 막진 못할 것이다.

여러 영화나 TV 드라마를 봐도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랜 기간 인공지능 기술을 갈구했다. 어쩌면 몇 가지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 큐빅은 자사 제품이 농담을 할 줄 안다고 주장한다. 설령 우리 집 변기가 주인을 알아보고 이런 농담을 한다고 한들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진 않을 듯하다. “세상에, 어젯밤에 무슨 쇳덩이라도 드셨어요?”

글=케빈 메니 뉴스위크 기자
번역=이기준

기사 이미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