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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의 지뢰부터 제거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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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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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일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서울에서 개최된 47차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핵 화생탄두를 포함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포괄적 미사일 대응작전개념 및 원칙의 이행지침을 승인했다. 공동선언문에 담긴 4D 작전개념은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 방어(Defense)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국민 대다수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북의 핵 위협에 대해 공세적인 전략으로 전환한다는 뜻이며, 억제전략의 구체적인 방법을 밝히는 것이다. 미국이 핵우산, 재래식 타격 능력,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은 다행스럽다. 이런 강경한 조치의 배경에는 2013년 4월 1일 핵 병진 노선 발표 이후 북한이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 선제타격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걱정을 하고 있다. 첫째는 공약의 함정(commitment of trap)이다. 강력한 억제를 약속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융통성을 앗아갈 수 있고 오히려 공약과 정해진 절차 때문에 전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둘째, 위기의식을 가진 북한이 도발로부터 급속히 긴장을 확대시키고 급기야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다. 이미 폴 브래큰이나 돈 브래넌과 같은 전문가들은 제2차 핵시대의 진입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 미국·러시아와는 달리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며, 미국의 기존 핵전략은 이러한 새로운 위협에 철저한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좋은 대안이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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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집권 이후 우리 군 당국이 발표한 북한의 도발 횟수를 검토해보면 2012년 24회, 2013년 39회, 2014년 45회로 점차 증가일로에 있다. 핵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도발 횟수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간접증거다.

 지난 8월 4일 목함지뢰 도발의 경우 불과 2주 내 포사격 교환으로 이어지고 준전시상태로 확대되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8·25 합의가 이뤄지고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예고했던 로켓 발사를 연기하고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했지만 위기가 얼마나 빨리 확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경제를 돕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 차례 선언한 바 있다. 또 한·중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 한·중·일 회의를 통해 북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당장 핵을 포기하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강력한 억제책과 함께 남북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긴장 해소를 위한 대화채널의 개설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는 별도로 남북 간 신뢰구축을 위한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지만 신뢰구축을 위한 제도적 접근에 대한 실패의 교훈과 기억은 새로운 대안 제시를 어렵게 한다. 따라서 북한의 지도부가 거부하기 힘든 국제적 관심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상징적 조치들이 필요하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위기가 자칫 남북 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뻔했던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지뢰 제거를 위한 본격적인 협의를 전개해도 좋을 것이다. 마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제70차 유엔총회 평화유지 정상회의에서 8000명의 평화유지군(PKO) 파견과 함께 불안정 지역에서 10개의 지뢰제거 작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또한 남북은 이미 2009년 비무장지대에서 지뢰제거를 위한 공동 작업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1997년 대인지뢰금지조약(오타와협약)이 체결됐지만 우리는 안보적 이유로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주장해온 비무장지대를 평화공원으로 만드는 사업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도 궤를 같이할 수 있는 연성 이슈의 범주에 해당된다.

 만약 북한이 지속적으로 사업에 임한다면 남북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통일시대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이 가장 절실한 이미지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소모적 군비경쟁을 종식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인도적 차원에서 국제규범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과거 실패사례의 교훈을 바탕으로, 실제 가능한 일부터 시작하는 실용적 자세가 요구된다. 지난 8월 4일의 위기를 계기로 남과 북이 비인도적 무기체계인 대인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비무장지대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진솔한 대화 제의가 멀고도 긴 신뢰구축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