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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찍고 강남 돌아 이태원으로 노래 따라 흐른 서울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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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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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서교동 소극장에서 가수 말로(왼쪽)와 장유정 단국대 교수가 대담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유흥 중심지 변화 보여주는 역사”
해방 전엔 서민 살던 북촌 자주 나와
1970~80년대 개발시대 강남이 소재
90년대 이후 혜화동·종로 다시 등장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소극장.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서울야곡’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다음 곡으로 ‘돌아가는 삼각지’가 나오자 관객들도 나지막하게 노래를 따라불렀다.

 이날 소극장에서 열린 ‘서울 미래유산 공감콘서트’는 서울시가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한 옛 대중가요 50곡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강석 서울시 문화정책팀장은 대중가요를 유산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대중가요 가사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담고 있는 ‘생활문화사 교과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래유산 선정곡 중 1910~45년 발표된 곡들엔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촌 지역 지명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청계천 이북과 이남을 각각 북촌·남촌이라 부르던 일제 강점기부터 이곳이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 돼왔기 때문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이나 조선호텔 등이 들어서 있던 남촌은 노래 가사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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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후 1950년대까지는 서울을 예찬하는 노래들이 많다. 현인의 ‘럭키서울’(49년)이나 장세정의 ‘울어라 은방울’(48년)이 대표적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그 시대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서울을 한껏 찬미하는 정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SEOUL, SEOUL)/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누구를 싣고 가는 서울 거리냐.”(‘럭키서울’ 중)

 60년대는 어떨까. 김작가 대중가요평론가는 “이 시기는 근대화와 이촌향도(移村向都·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한다는 뜻)라는 핵심 키워드로 설명된다”며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처럼 서울로 떠난 님을 그리는 가사가 많았다”고 말했다.

 명동·청바지·통기타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청년문화’의 시대인 70년대엔 이장희의 ‘그건 너’(1973년)와 양병집의 ‘서울 하늘 2’(1974년) 같은 노래가 히트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자아 찾기나 사랑에 대한 풋풋한 성찰부터 독재정권에서의 방황까지 그 즈음 청년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가사가 됐다”고 했다.

 80~90년대를 거치며 대중가요는 강남으로 떠났다가 다시 강북으로 돌아왔다. 80년대 유흥문화의 중심지가 강남으로 옮겨가며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1988년) 같은 노래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혜화동과 종로 등 강북 지역이 향수의 대상이 됐고 노래 가사에도 자주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최 평론가는 설명했다.

 ‘미래유산 공감콘서트’ 진행을 맡았던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UV의 ‘이태원 프리덤’이나 10㎝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등 최근 노래들도 현재 서울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며 “미래유산 선정이 꾸준히 이어져 50년 뒤엔 이 노래들도 ‘지나간 서울’을 보여주는 유산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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