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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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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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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온 나라가 국정교과서 파동에 넋이 빠지는 바람에 못 챙기는 중요한 흐름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4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취임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게 된 여성할당제 바람이 그중 하나다.

 지난 4일 취임한 트뤼도는 남녀 각 17명으로 이뤄진 내각을 발표했다. 남녀 동수 내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칠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가 남녀 10명씩의 내각을 꾸린 게 시초로 그 후 프랑스·이탈리아도 가담했다.

 그럼에도 새삼 눈길이 가는 건 올 3월 독일에서 채택된 ‘여성 임원 할당제’ 영향이 컸다. 2003년 노르웨이에서 시작한 이 제도는 대기업 임원의 30~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했다. 남성 역차별이란 반발이 거셌지만 기업 내 성차별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반대를 꺾었다. 이후 스웨덴·핀란드·프랑스에 이어 유럽의 거인 독일까지 가세해 이젠 대세가 됐다.

 알파걸에 치여 사는 남자로서는 여간 부아가 치밀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자리를 여자라고 거저 꿰차는 걸로 보일 게다. 된장녀·김치녀·김여사를 들먹이는 여혐(여성 혐오)이 더 기승을 부릴 판이다.

 하지만 세상, 특히 한국이 잘되려면 여자들의 활약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인구문제의 석학 한스 로슬링 교수도 “한국의 저출산, 저성장에 대한 특효약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고 처방한 바 있다.

 실제로 맥킨지 조사 결과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회사의 수익률이 그렇지 않은 업체보다 10% 많은 걸로 나왔다. 출중한 여성 능력도 능력이지만 이들에게 잘 보이려는 수컷 본성도 작동한 덕일 터다.

 더 명심할 건 여자가 잘나가야 남자도 행복해진다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남자들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거다. 20여 년 전 스웨덴에서 페미니즘 확산 이래 5년이었던 남녀 간 평균수명 격차가 2년으로 줄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요즘 서구에선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야 남녀 모두 행복해진다고 믿는 이들이 늘었다. 가사를 책임지는 남편, 즉 ‘하우스 허즈번드(house husband)’조차 특별하지 않게 됐다. 올 들어 ‘아마리’ ‘퀸’처럼 성 중립적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는 부모가 부쩍 많아진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 여자로 인해 낡은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노래한 시인 루이 아라공의 ‘미래의 시’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