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발레, 그리고 국정교과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기사 이미지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어울리지 않지만 발레를 5년째 배우고 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내 몸뚱이 하나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체감하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즐거운 이유. 마음과 달리 몸만큼은 정직하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겸허한 자세로 기본부터 연습을 하다 보면 영영 뛸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랑주테(양발을 교차시켜 점프하는 동작)도 흉내는 조금이나마 낼 수 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헉헉 대며 수백 번의 실패를 한 뒤의 얘기이지만.

 재미있는 건 그랑주테처럼 화려한 동작일수록 기본과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발레 선생님은 그랑주테에 도전하기 전 ‘플리에’라는 기본 동작을 수백 번 연습하라고 했다. 발뒤꿈치를 맞대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발레 동작의 기본 중 기본이다. 플리에만 반복하면 그랑주테는 언제 뛰냐고 묻자 “도약을 하려면 굽히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좌와 우의 균형이다. 왼발을 먼저 앞에 놓고 뛴 후엔 오른발로도 같은 동작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이 깨지며 몸이 뒤틀리고 망가진다.

 6~8일 한국에서의 마지막 무대에 오르는 발레리나 강수진도 “균형을 잃지 않을 것”과 “매일매일의 기본 연습”을 주요 덕목으로 꼽는다. 그는 국립발레단장에 오른 뒤에도 매일 플리에를 포함한 기본 연습을 일반 단원들과 함께 소화해왔다고 한다. 그의 대표 동작 중 하나인 그랑주테가 깃털처럼 사뿐하고도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균형을 잃지 않고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일 터다.

 작금의 국정교과서 논란을 보면 우리 사회가 꼭 플리에 없이 그랑주테를 뛰려는 것만 같다. 균형감각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한쪽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왼쪽만 보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오른쪽만 본다.

 집필진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특정 인물이 미화될 거라는 얘기가 기정사실처럼 떠돌고,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면 생각이 없거나 용기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한국에 연수를 온 한 외국인 여기자는 최근 “사람마다 국정교과서에 대해 하는 얘기가 180도 다르다”며 “뭐가 진실인 거냐”고 헷갈려 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입을 닫고 귀를 열어보면 어떨까 싶다. 입 대신 귀를 열고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기본부터 밟아보자는 얘기다. 자신의 생각에만 무게추를 두고 남의 생각에 눈을 감는다면 생각도 뒤틀릴 수밖에 없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