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물 저 물 가릴 때냐 … 4대강 입장 바꾼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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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대 강 사업은 반대하지만, 그 물을 끌어 쓰는 것은 수용하겠다.”

대청·보령댐 내년 1월 고갈될 판
4대강 보 물 활용예산 수용키로
가뭄 초래한 정부에 사과 요구도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4일 오후 당 정책위 회의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4대 강 사업에 줄곧 반대해온 새정치연합이 4대 강 사업의 결과물을 활용하는 예산은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야당의 입장이 변한 이유는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충청남도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의 식수원인 대청댐과 보령댐이 내년 1월 초면 고갈된다. 현재 유일한 대안은 야당이 반대해온 4대 강 사업으로 만든 보(洑)에 담긴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충청 지역 가뭄에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가뭄이 경기와 강원·호남권으로 확대된 데다 야권의 ‘미래 주자’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보의 물을 활용하자”고 나서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최 정책위의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상류 치수사업을 먼저 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무시하고 4대 강 사업을 밀어붙여 가뭄을 초래한 데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물길을 놓는 사업이 아닌 물을 유통시키는 도수사업 예산은 ‘4대 강’이라는 타이틀만 붙지 않으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물을 보에서 끌어오든 하류에서 끌고 오든 중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는 예산 증액에 대해선 반대했다. 그는 “이미 제출된 하천 정비사업 4250억원, 4대 강 유지·보수 명목의 1650억원 예산 범위에서 도수사업 등을 해야 한다”며 “추가 예산을 달라는 주장은 또 다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내년 총선에서 이익을 보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도 “4대 강이든 5대 강이든 가뭄 해소에 도움만 된다면 하겠지만 가뭄을 빙자해 벌이는 4대 강 사업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당 내에선 “가뭄이 심각한데 4대 강에 집착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국토위 간사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당은 4대 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현재 4대 강에만 물이 있는 게 현실”이라며 “그 물을 쓰자는 데 반대할 명분이 없어 예산심사에서도 정부안을 대부분 수용했다”고 했다. 실제로 국토위는 하천정비 예산을 오히려 841억원가량 증액시켰다.

 국회 속기록에도 “4대 강을 활용하자”는 야당 의원들의 발언이 등장한다.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22일 기획재정위 예산소위에서 “(가뭄 대책을) 충분하고도 실효적으로…”라며 “아침에 안희정 지사가 ‘장탄식을 하던데”라고 발언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소속 박명재 소위 위원장이 “(안 지사가 요구하는) ‘보령댐 등’으로 표시할까요”라고 되묻는 일도 생겼다. 박수현 의원은 9월 국정감사에서 “4대 강 물은 찰랑찰랑 넘치는데 물이 필요한 곳에 연계되지 않는다”며 “상습 가뭄지역은 4대 강과 연계해 충분히 중장기 과제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태화·박유미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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