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튀어나올 듯 생생하네, 겸재·혜원의 고양이와 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기사 이미지

터럭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는 겸재 정선의 고양이 그림 ‘추일한묘’(왼쪽)와 풍속화의 대가 혜원 신윤복의 개 그림 ‘나월불폐’. 우리 땅의 동물을 우리 눈이 본 그대로 그렸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검은 털빛이 반지르르, 몸매는 통통하고 금빛 눈매가 초롱같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추일한묘(秋日閑猫)’다.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는 터럭 하나하나가 선명할 지경으로 세심한 관찰력과 적확한 묘사가 돋보인다. 우리 산수를 우리 눈이 본 대로 그려냈던 진경산수의 창시자인 겸재의 소품이다. 말년작임에도 흔들리지 않은 붓끝이 매섭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전’ 제5부 ‘화훼영모(花卉翎毛)-자연을 품다’에는 이처럼 동식물을 소재로 생명의 이치를 돌아보는 그림 90여 점이 나왔다.

DDP서 ‘간송문화전 - 화훼영모’
공민왕·신사임당 등 친근한 걸작
꽃·풀·동물 그린 90여 점 한자리에

 실물이 남아있는 화조화의 효시라 할 고려 공민왕에서 조선말 장승업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사대부 화가와 화원이 꽃과 풀, 새와 짐승에서 본 것은 세상의 섭리였다. ‘아금관물견천심(我今觀物見天心)’이라 하여 ‘지금 생물을 바라보며 하늘의 마음을 보았노라’는 성찰의 뜻을 그림에 담았다.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기획했던 진경산수전이 크고, 사군자전이 높은 전시였다면, 이번 화훼영모전은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대중적인 전시라고 밝혔다.

 그림 속 소재가 품고 있는 상징을 읽는 것이 이번 전시를 보는 첫째 재미다. 잉어는 흔히 등용문이라 하여 세속의 성공을, 모란은 풍성한 꽃 자태로 부귀영화를, 포도와 석류는 알알이 열리는 많은 수확물로 다산을 염원한다. 시대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동식물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중국의 주자성리학을 도입해 이를 따르던 조선 전기 화가들은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던 중국 물소와 양을 상상해 그렸다. 퇴계와 율곡이 조선 성리학을 이루어내자 이를 바탕으로 우리 시각을 갖춘 사대부 화가들이 우리 주변의 새와 꽃과 짐승을 사생하기 시작했다. 진경산수화풍의 화훼영모화가 이 땅 사람들과 공감하며 절정을 이룬 것은 단원 김홍도(1745~1806?)에 이르러서다. 이후 청조고증학을 받아들인 추사 김정희(1754~1856)가 청조문인화풍의 생략기법으로 화단을 이끌고, 조선 후기말의 노쇠현상이 맞물리면서 그림은 묘사력과 발랄함을 모두 잃고 만다. 장승업(1843~97) 등이 중인 계층의 취향에 맞춘 장식화를 생산하는 데 머물면서 조선조의 화훼영모화 계보는 막을 내렸다.

 전시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숨어있는 걸작을 찾는 것이다. 상류사회의 질펀한 애정 풍속도나 양반들의 이중성을 드러낸 풍자화로만 알려졌던 혜원 신윤복(1758~?)의 개 그림 ‘나월불폐(蘿月不吠)’는 혜원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진지함으로 눈길을 붙든다. 한국미술사의 의문점을 환기시키는 작품도 있다. 율곡의 어머니로 더 유명했던 신사임당(1504~51)의 8폭 화첩 ‘훤원석죽’은 과연 신사임당의 진작 범위를 어디까지로 규정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02-2153-000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