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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겉도는 서울시의 택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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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나한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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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한
사회부문 기자

장면 하나. “해피존이 아니라 회피존(zone)이네요.” 지난달 24일 오전 1시30분쯤 서울 강남구 강남역 부근. ‘해피존’이라 쓰인 노란 풍선 뒤로 줄을 서서 택시를 기다리던 황미연(24)씨는 화를 냈다. 서울시가 금요일 밤 강남역의 승차난을 해결하겠다며 시행한 ‘해피존’에서 30여 분간 기다렸지만 택시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면 둘. 서울시가 “내년부터 손님에게 반말·폭언을 한 택시기사에게 10만원씩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4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비판 댓글이 잇따랐다. 불친절 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승객에게 지웠기 때문이다. 회사원 한모(27·여)씨는 “휴대전화 녹음기를 켜놓은 채로 택시를 타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올 한 해 서울시가 발표한 택시 관련 정책은 10개가 넘는다. 택시동승제, 심야택시 3000원 인센티브, 택시기사 복장단속제…. 대부분 승차 거부와 불친절 행위 근절을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심야택시 3000원 인센티브제의 경우 “승차 거부 안 했다고 3000원을 얹어주느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지난 5월엔 심야택시 합승을 허용하려다 ‘남녀가 함께 탈 때는 남자가 앞에 탄다’ 같은 난해한 규정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없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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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밤 서울 강남역의 ‘해피존’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승객이 택시를 타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시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심히 정책을 내놓는데 시민들의 공감을 못 얻는 이유는 뭘까.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변죽만 울리기 때문이다. 심야승차 거부의 핵심은 심야 시간(자정~오전 2시) 택시의 절대량이 적다는 데 있다. 개인택시 운전기사들의 55.7%인 60세 이상 기사들은 심야 운행을 기피한다. 이에 시는 “개인택시의 심야 의무 운행 시간을 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택시조합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진전이 없다. 결국 해피존 같은 대증적 처방들만 내놓고 있다.

 기사의 불친절 문제도 택시회사 간 경쟁을 유도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도 내년부터 택시회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의 질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년 예산이 18억원밖에 배정되지 않아 제대로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박사는 “최소 50억~60억원이 되지 않으면 적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답답합니다.” 서울시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내놓는 정책마다 비판에 시달리니 그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제자리만 맴도는 택시 정책에 시민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정책의 남발은 결국 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시의 결단과 설득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김나한 사회부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