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공육·붉은고기 불안, 과학적으로 소통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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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기관(IARC)이 지난 26일 소시지·햄 같은 육가공품과 소·양·돼지 등의 붉은 고기를 발암물질로 분류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암 연구의 지휘·조정 업무를 하는 IARC는 육가공품을 암 발생 위험이 큰 1군 발암물질로, 붉은 고기는 암 발생 개연성이 있는 2A군 발암물질로 각각 분류했다. 10개국 22명의 전문가 검토를 토대로 육가공품을 매일 50g 먹으면 직장암 등에 걸릴 위험성이 18% 높아지고 붉은 고기도 대장암·직장암·췌장암·전립선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사실 이들 식품의 건강 위해성은 오래전부터 경고돼 왔으며 IARC가 기존 연구를 정리해 새롭게 이슈화됐을 뿐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건강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은 과잉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마트 등의 육가공품과 붉은 고기 코너에 소비자 발길이 뜸해지고 매출이 20% 이상 곤두박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발표 내용이 원론적 수준이라며 조만간 국내 육가공품과 붉은 고기에 대한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신속한 설명과 권고, 조치를 바라는 소비자들의 심정과는 사뭇 거리감이 있다. 문제가 커지자 IARC는 뒤늦게 가공식품과 붉은 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며 지나친 섭취는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권고였다고 해명했지만 놀란 소비자를 진정시키기에 역부족이다. 고객이 끊기면서 그 여파가 축산농가와 육가공업체에까지 미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식약처가 이를 조사하는 사이 혼란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식품 행정에서는 소비자가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생명이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신속하고 쉬운 전달도 중요하다. 정부는 신문·방송을 비롯한 매체는 물론 식약처나 보건복지부·교육부·여성가족부·지방자치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에 즉각 나서야 한다.

 육류는 인체 신진대사에 필수적인 양질의 단백질과 철분·아연·비타민B12·오메가3 등 신체와 두뇌활동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공급한다. 육류 소비 자체가 건강에 나쁜 것으로 호도되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육가공품과 붉은 고기의 위험성만 강조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식단의 중요성을 알리는 게 암 예방과 영양 균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시중에는 “자외선과 미세먼지에 이어 육가공품, 붉은 고기까지 발암물질이라니 낮에 외출도 안 하고 숨도 쉬지 말고, 이제 고기까지 먹지 말라는 것이냐”는 뜬소문이 판치고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정확한 위해성 평가를 거쳐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의학 커뮤니케이션 강화는 정보 과잉 시대에 우리 국민의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