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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1901년 후보에도 못 올랐던 톨스토이…1933년에서야 '이반 부닌' 첫 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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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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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노벨상을 수여하기 시작한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모두 111명이다. 이들 중 논란이 없었던 수상자는 없었을지 모른다. 역대 수상작가는 무슨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러시아와 노벨문학상의 인연
당시 명성 체호프·블로크 등
한림원의 비난 속 선택 못받아

'닥터 지바고' 파스테르나크
당국의 압력으로 결국 상 거부

숄로호프, 소련 동의 받은 첫 수상
1987년 브롯스키서 문학상 멈춰

위대한 작가와 시인들 중에서 누가 정말로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를 둘러싼 논쟁은 20세기 초부터 있어 왔다. 알프레드 노벨은 이상주의적 방향을 제시하는 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상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벨문학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최초의 노벨문학상은 무명의 프랑스 서정시인 쉴리 프리돔(Sully Prudhomme)에게 수여됐는데 유럽 문단은 격분했다. 당연히 톨스토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작가와 문화 활동가들은 노벨상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편지를 레프 톨스토이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1901년 톨스토이는 25명 후보자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그 후 톨스토이는 4년간 매년 후보로 추천됐지만, 노벨상 위원회와 카를 비르센 스웨덴 한림원 서기는 냉담하기만 했다. 비르센은 톨스토이를 무조건 반대하면서 “이 작가는 문명의 모든 형식을 비난하며 고급 문화의 모든 면과 동떨어진 원시적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미 19세기 말 러시아 문학이 유럽의 주요 문학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1933년 이반 부닌이 상을 받기까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는 한 명도 없었다. 러시아 전체와 유럽에 명성을 떨쳤던 안톤 체호프도,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러시아인에게 추앙받았던 알렉산드르 블로크도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1930년 토마스 만은 작가이자 정교 사상가인 이반 시멜레프의 대하소설 ‘죽은 자들의 태양’에 충격을 받고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포함시킬 것을 노벨상 위원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시멜레프는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의 소질을 갖고 있지만, 위대한 작가가 되지는 못했다”며 거부했다.

러시아의 두 번째 노벨문학상은 1958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받았다. 그의 동의 없이 국외에서 출판된 소설 ‘닥터 지바고’로 수상했다. 그러나 곧이어 소련에서 벌어진 박해로 인해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5년에는 철저한 소비에트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됐다. 소련 지도부의 동의를 받고 수여된 유일한 노벨문학상이었다.

1970년에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수상했다. 솔제니친의 작품이 처음 출판되어 수상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이는 노벨문학상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솔제니친은 노벨상 위원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상에 정치적 측면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문학의 마지막 노벨상 수상자는 1987년에 나왔다. 시인 이오시프 브롯스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그 뒤로는 오랜 침묵이 이어져 왔다.

노벨문학상은 어떻게, 어떤 원칙에 따라 수여될까? 노벨상 위원회의 결정에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문학도 문학상도 수수께끼 없이는 불가능하다.

율리야 레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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