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명민한 나현의 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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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32강전 B조> ○·펑리야오 4단 ●·나 현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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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보(9~19)=앞서도 말했지만 두 기사는 ‘닮은꼴’답게 실리에 민감하고 종반이 강하다는 특징도 비슷하다. 굳이 나누자면 나현이 견실함을 조금 더 선호한다고 할까. 격렬하게 부딪칠 때는 어차피 그런 구별도 사라지지만.

 많은 바둑애호가들이 프로바둑계를 무림호걸의 세계와 비교하기를 좋아하는데 거기에 맞춰, 풍기는 이미지를 보면 나현은 명문세가의 후계자 같다. 물론, 노골적인 힘의 바둑이 아니라서 우직하게 권장을 휘두르는 황보세가나 산동악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오대세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남궁세가 역시 아니다. 나현의 검은 명민하다. 특이하게 지혜가 담긴 검을 쓴다. 남궁세가의 제왕검형(帝王劍形)처럼 묵직한 중검(重劍)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사납고 맹렬한 독이나 암기를 뿌리는 사천당가는 더더욱 아니겠다. 그럼, 뭐 하나밖에 안 남았네. 제갈세가. 무공보다는 지혜를 앞세워 무림의 조언자를 자임해온 가문이지만 이들에게도 무공으로 일가를 이룬 명문세가 못지않은 검예(劍藝)가 있다.

 좌하귀 9부터 14까지의 소목정석도 두 청년의 기풍대로 간다. 예전에는 12 때 ‘참고도’ 흑1, 백2를 교환한 다음 흑3, 5로 마무리하는 정석도 자주 등장했는데 요즘은 좌상귀 15로 달려가는 속도 지향의 수법이 자주 보인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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