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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이란 ‘세월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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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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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오늘 밤 사이에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북녘에 두고 온 여동생 노영화(88)씨를 65년 만에 만난 노영녀(93) 할머니는 25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끝날 무렵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은 남북 할 것 없이 모두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북측 조카 민복수(56)씨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그러나 백수(百壽)를 앞둔 노영녀 할머니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딸 김선애(57)씨가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굳이 입 밖으로 내놓지 않으면서 할머니의 마음을 대신 얘기해 줬다. “내년에도 또 오고 싶지만 아마 안 될 거야. 우리 말고 오고 싶은 사람도 너무 많고….”

 25일의 마지막 단체상봉 종료 시각이 가까워지면서 상봉장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딸에게 줄 꽃신을 챙겨 온 남측의 최고령자 구상연(98) 할아버지는 첫날인 24일 단체상봉에서 북녘 딸에게 꽃신을 신겨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할아버지는 고령에 피로가 겹친 듯 딸과 헤어지던 때 얘기만 반복하며 횡설수설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튿날인 25일엔 생이별을 예감한 듯 말이 없어졌다. 북녘에 두고 온 딸 구송옥(71)·구선옥(68)씨도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남녘의 아들 구형서(42)씨가 구상연 할아버지에게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곧 끝이니까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라고 재촉했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만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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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석(93) 할머니와 북측 아들 한송일(74)씨가 25일 금강산호텔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65년이라는 세월의 벽은 높고도 견고했다. 2박3일간의 일정 중 가족에게 허락된 건 2시간씩 이어지는 6회의 상봉이 전부다. 12시간으로 65년의 벽을 깨는 건 역부족이다. 그나마도 한 번의 비공개 개별상봉을 제외하고는 북측의 경우 ‘보장성원(지원요원)’들이 있는 가운데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이렇게나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는 건 이름도 얄궂은 ‘작별상봉’이다. 두 번째 생이별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잔인하다. 냉정함을 유지하던 북측 보장성원의 눈가도 작별상봉에선 촉촉이 젖어들곤 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한반도는 가족 간의 도리를 중시하는 뿌리를 공유한다. 그런 남과 북이 생이별을 한 가족에게 기계적 상봉의 형식을 강요하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하루빨리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가족들에게 보다 오붓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도록 형식을 진화시켜야 한다. 여기엔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인도주의적 도리다. 이산가족들은 남북을 막론하고 “하룻밤만이라도 같이 자면 안 되느냐” “얘기를 좀 할라치면 ‘10분 후 만남이 종료됩니다’라는 방송이 나온다”며 아쉬워했다. 그들의 애절한 눈빛을 외면한다면 남북 모두 이산가족을 두 번 울리는 셈이 된다.

글=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