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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을 현대영어로 바꾸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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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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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샤피로
미 컬럼비아대 교수

미국 오리건주의 셰익스피어 축제 조직위원회는 최근 “현대인에게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언어는 너무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어 극작가 36명에게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을 현대영어로 바꿔 달라고 의뢰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짐작은 해왔지만 그래도 너무나 충격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리건 조직위의 실험은 돈만 낭비한 채 헛되이 끝날 공산이 크다. 관객들이 셰익스피어 희곡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잡하게 얽힌 셰익스피어 시절의 영어가 아니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최고라고 인정받는 연출자·배우조차 셰익스피어 대사의 뜻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공연을 해왔기에 대중이 ‘셰익스피어 울렁증’을 앓아온 것뿐이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주장은 셰익스피어의 생전에 이미 나왔던 얘기다. 셰익스피어의 라이벌이었던 벤 존슨조차 “『맥베스』의 번잡스러운 대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고 불평한 바 있다. 존슨은 맥베스의 치열한 독백이 의도적으로 어렵게 쓰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복잡한 대사는 질풍노도와 같은 인물의 도덕적 파멸을 좇아가며 열에 들떠 극도로 흥분한 맥베스의 심리를 잘 표현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대사의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더라도 관객은 맥베스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는 배우가 맥베스 말의 의미와 뉘앙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표현할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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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나는 셰익스피어 희곡에 대한 참신한 실험을 목격했다. 셰익스피어의 원 대사를 그대로 살린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을 90분으로 축약해 셰익스피어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공연한 것이었다. 관객은 라이커스섬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이었다. 이들은 공연이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러나 공연 도중 나간 수감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 관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공연에 몰입했다. 장면 장면마다 웃음과 탄식을 내뱉으며 무대에 완벽히 동화됐다. 수감자들이 중세영어로 쓰인 대사 하나하나를 다 이해했기에 감동을 받은 것일까?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 자신을 제외하고 그의 모든 대사를 이해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훌륭한 연극을 지켜본 관객들이 그러하듯 수감자들은 대사 하나하나를 전부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배우들과 감독이 대사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셰익스피어의 언어에서 인물의 성격을 이해할 단서를 찾아낸 뒤 공연을 했기에 가능했다.

 얼마 전 『아테네의 타이몬』을 현대영어로 개작한 버전을 접했다. 지난 5년간 오리건주 셰익스피어 축제 조직위가 워크숍에서 공유해 온 번역본이다. 훌륭한 극작가들이 참여해 만든 작품이지만 엘리자베스 시대의 느낌도 아니고 현대적인 느낌도 주지 못하는 잡탕에 불과했다. 읽다 보니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과거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기해 온 배우들은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대사 곳곳에 심어진 단서와 강조점에 의지했다. 그러나 현대영어 번역본은 이런 맛을 찾아볼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장기인 약강(弱强) 5보격의 운문 대사에 녹아있던 멋진 운율과 박자도 사라졌다. ‘당신(you)’이 ‘그대(thee)’로 변모하며 인물이 느끼는 친밀감의 변화를 배우가 표현하게끔 해줬던 기막힌 뉘앙스도 온데간데 없다.

 중의성과 공감적 울림은 셰익스피어 언어만의 매력이다. 그러나 이마저 현대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소멸됐다. 『아테네의 타이몬』에는 인간을 혐오하는 타이몬이 “돈이 모든 인간관계를 더럽힌다”며 2명의 매춘부와 격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타이몬은 매춘부들에게 “모두에게 역병을 옮겨라/ 너희가 활동하면 그들은 패배하고 물러나리니/ 똑바로 일어서게 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똑바로 일어선(erection)’은 성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에 앞서 사회의 발전이나 승격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영어 번역본은 이런 의미를 무시하고 대사를 저질 유머로 바꿔버렸다. 타이몬이 “똑바로 일어선 모든 것”을 노래하는 격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선 현란한 무대 배경이나 인공 조명은 필요 없다. 그의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다운 것’은 오로지 시대를 초월해 빛나는 언어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셰익스피어 공연 팸플릿은 액션 감독이나 무대 배경 디자이너까지 이름을 올리는 반면 그 멋진 언어를 감수한 전문가 이름은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리건 조직위는 기업인이 세운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부탁건대 후원금을 받는다면 셰익스피어 작품을 망치는 데 쓰지 말고 그의 언어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를 고용해 공연의 품격을 높이는 데 쓰기 바란다. 현대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한 유망 극작가 36명에게 『리어왕』이나 『햄릿』에서 셰익스피어의 향기를 쓸어내는 악역을 맡기지 말라. 대신 이들이 차기 브로드웨이 히트작을 쓰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제임스 샤피로 미 컬럼비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