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후 ‘좌측→우측통행’은 시민의 시대 의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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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32면

2010년부터 우리나라의 보행인 통행규칙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바뀌었다. 왼쪽 사진은 우측보행 캠페인 기간 중인 2007년 7월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우측으로 통행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좌측통행이 실시 중이었던 2003년 어느 비 오는날 시민들이 육교에서 질서정연하게 좌측으로 보행하는 모습. 통행규칙은 고대 로마 때부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좌에서 우, 우에서 좌로 바뀌어왔다. [중앙포토]

최근 국민안전처는 2007년부터 실시해오던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을 이번 10월부터 폐지한다고 공표했다. 1998년부터 시행된 한 줄 서기 캠페인까지 감안하면 8~9년마다 에스컬레이터 통행규칙이 바뀐 셈이다. 사소한 규칙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규칙변경 역시 무심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자그마한 규칙 하나라도 잘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잦은 규칙변경이 큰 스트레스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이다.


에스컬레이터 줄서는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좌·우측 통행규칙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94년 전인 1921년 10월 25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1906년 대한제국 경무청령으로 채택되었던 우측통행을 폐지하고 좌측통행으로 변경했다. 1945년 일제 패망으로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실시되면서 한반도의 통행규칙은 우측통행으로 다시 바뀌었다. 2010년 우리 정부는 차량뿐 아니라 사람도 우측으로 통행한다고 고시했다.


규칙 변경은 스트레스와 비용 수반좌우 통행의 기준은 고대로부터 자주 바뀌어왔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채석장 유적지에서 채석장 바깥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도로의 왼편이 오른편보다 더 파여 있음을 발견했다. 가벼운 빈 수레가 채석장 안으로 들어가서 광물을 싣고 무겁게 밖으로 나왔을 것이기 때문에 채석장 출입 수레는 좌측통행을 했다고 유추했다. 즉 고대 로마 시대는 좌측통행이었다는 것이다.


좌측통행은 봉건시대 기사계급과 관련되어서도 설명된다. 오른손잡이 기사는 칼을 몸 왼쪽에 차야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는데 마주보고 걸을 때 칼끼리 부딪쳐 시비가 붙지 않도록 좌측통행을 했다는 해석이다. 칼을 왼손에 잡은 채 말을 탈 때는 말 왼편에서 타는 것이 편했다. 또 말을 탄 채 평민들을 감독할 때에도 좌측통행을 해야 제압하기가 수월했다.


이런 통행규칙은 근대화로 변화를 겪었다. 여러 말들이 끄는 수레에서 마부는 맨 왼편의 말에 앉아야 오른손으로 말채찍을 사용할 수 있었고 또 반대편에서 오는 말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우측통행을 했다는 것이다. 느슨하게 지켜오던 우측통행 대신 좌측통행이 교통량 증대와 함께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측통행 규칙에 관한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공식 문서는 러시아 엘리자베타 여왕의 1752년 칙령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말 미국은 독립 강화의 일환으로 펜실베이니아 주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영국식 좌측통행 대신 우측통행을 실시했다. 혁명 전후 프랑스에서 좌측통행은 오른손에 칼이나 채찍을 들고 말 위에서 평민을 감독하는 이미지였다. 이러한 이미지의 좌측통행 대신 우측통행이 혁명 이후 보편화됐다. 우측통행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해외정복으로 유럽대륙 전체로 확산했다.


영국 등 나폴레옹에게 정복된 적 없는 국가들은 좌측통행을 유지했다. 일본도 영국과의 교류 속에 1872년 철도를 개통함에 따라 좌측통행이 보편화했다. 식민지 한국도 좌측통행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 등 유럽대륙의 나머지 좌측통행 국가들은 나치 독일에 점령됨에 따라 우측통행으로 바꿨다. 대체로 좌우 통행방식은 지배국의 방식을 따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본에의 편입, 미군정, 일본으로 반환 등에 따라 좌측통행, 우측통행, 다시 좌측통행으로 바뀐 일본 오키나와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표준은 변경보다 선점 전략이 유리 좌우 통행규칙은 자동차의 표준에 영향을 준다. 좌우 통행에 따라 전조등, 윈도우 와이퍼, 방향등 스위치 등이 다르게 설치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좌측통행 차량의 운전석이 우측에, 우측통행 차량의 운전석은 좌측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우측통행으로 바꾼 스웨덴처럼 좌측통행 규칙에서도 많은 좌측 운전석 차량이 운행됐던 경우가 있다. 또 미국 등 우측통행 국가에서도 우편차 등 일부 차량의 운전석은 우측에 위치해 있다.


표준 변경은 쉽지 않다. 좌우통행 규칙을 변경한 나라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바꾸고 싶어도 어려워 포기한 나라도 많다. 예컨대, 파키스탄은 우측통행으로 바꾸려 했지만, 좌측통행에 익숙한 야간수송용 낙타들이 통행규칙 변경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우측통행을 포기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5년 전 우측보행이 고시되었지만 에스컬레이터나 회전문의 방향 전환 비용이 부담스러운 곳에서는 여전히 좌측보행이 실시되고 있다. 또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 서기를 없애려고 8년간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표준은 그만큼 자체 생명력을 지닌다. 어떤 것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그것을 표준으로 만들어 그 해체 비용을 높일 수 있다. 물론 반대하는 측에서는 그 표준화를 잘못된 대못질로 부르지만, 뭐라고 불리든 박힌 대못을 뽑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표준 구축은 이미 다른 표준이 있을 때보다 아예 없을 때에 더 쉽다. 그래서 표준은 변경보다 선점(先占)으로 추구한다.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변경이 어려운 이유도 일종의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2년 5월 제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의 국회선진화법 통과로 국회의결에 50% 초과가 필요하던 것이 실제론 60% 이상으로 바뀌었다. 60% 룰이 표준으로 정해진 결정은 50% 룰에 의해서였지만, 다시 50% 룰로 환원시키려면 60%의 동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를 자기구속적 표준화 전략으로 부를 수 있다.


자기구속적 성격을 가지는 표준화 패전 후 일본의 좌측통행 고수는 일본 자동차산업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 자동차에 일종의 무역장벽으로 작용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로서는 미국보다 작은 시장인 일본과 영국 등에 수출하기 위한 좌측통행용 자동차의 생산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하니 생산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1970년대부터 미국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무기로 미국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일본 자동차의 국내 생산 대비 수입 비율은 거의 매년 1%에 불과했지만, 1960년대 10% 전후에 불과했던 일본 자동차의 국내 생산 대비 수출 비율은 1970년대 중반부터 거의 50%에 이르렀다.


경쟁국의 상품이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도록 표준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해당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 국가로서는 표준을 바꿔서라도 수입품의 단가를 낮추기도 한다. 2009년 사모아독립국은 좌측통행을 채택하고 있는 일본·호주·뉴질랜드의 값싼 중고차를 수입하기 위해 좌측통행으로 변경했다. 통행규칙이라는 표준이 자동차라는 사물에 의해서도 좌우되는 것이다.


북한을 통해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연결하려는 철도연결 사업은 북한 참여 문제뿐 아니라 표준화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철로 폭, 에너지공급방식, 신호체계 등 서로 다른 시스템이 간단히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내 국철과 도시전철의 운영조차 단일 표준이 아니다. 코레일 운영구간(서울지하철 1호선 포함)은 좌측통행이고 도시전철은 우측통행이다. 이는 표준을 일찍 통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사례다. 표준화 타이밍을 이미 놓친 상황에서는 다른 극복 전략이 필요하다.


한 평면 위에서는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이 서로 연결될 수 없다. 그러나 입체적이라면 연결할 수 있다. 꽈배기형태의 고가나 터널이 그 예이다. 실제 우측통행의 서울지하철 4호선과 좌측통행의 국철이 남태령-선바위 구간에서 그런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전류공급방식이 변경되는 구간에서는 전류공급 없이 관성으로 이동한다. 마카오·홍콩·태국·영국 등의 좌측통행 도로가 우측통행의 주변국과 연결될 때에도 입체적 방식이 사용된다.


표준 교체는 입체적으로 접근하면 가능

표준 간의 연결뿐 아니라 표준의 교체도 입체적으로 접근할 때 가능하다. 좌우의 일차원적 스펙트럼에서는 철옹성 같은 승자의 위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림 1의 일차원 공간에서 A, B, C의 3인 투표자가 후보 X와 Y 가운데 자신에게 가까운 후보에게 투표하고 과반수로 당선자를 선출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B에 위치한 후보 X는 다른 후보와 경쟁해서 절대 지지 않는다. 예컨대 Y가 A와 B 사이에 위치한다면, A만 Y에게 투표하고 B와 C는 X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X가 승리한다. 즉 B에 위치한 X라는 표준을 교체하기가 어렵다.

이제 세로축의 스펙트럼이 추가되어 A, B, C가 그림 2처럼 배열되어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지배적 위치를 흔들 수 있다. 예컨대 X가 A, B, C 한가운데에 위치한다고 하자. A를 중심점으로 하여 X를 지나는 원 둘레는 A의 무차별곡선이다. 원 둘레 위의 X나 어떤 점이나 모두 A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즉 A가 X보다 더 선호하는 위치는 A 중심의 원 내부이다. B와 C에서도 X를 지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A 원과 B 원이 겹치는(A와 B가 X보다 더 선호하는) 붉은 색 부분에 Y가 있다고 하자. Y는 A와 B의 지지로 X에게 승리한다. 이 외에도 B 원과 C 원이 중첩되는(B와 C가 X보다 더 선호하는) 푸른 색 부분 그리고 A 원과 C 원이 겹치는(A와 C가 X보다 더 선호하는) 노란 색 부분도 X에게 이기는 위치다. X가 어디에 위치하더라도 X를 무너뜨릴 수 있는 Y는 곳곳에 존재한다. 이것이 입체적 표준해체 전략이다.


표준화의 극단적 형태는 의식화이다. 표준화처럼 의식을 심는 작업과 그 의식을 지우는 작업은 전혀 다르다. 그림을 지운 후 다시 그리기보다는 기존 그림을 버리고 새롭게 그리는 것이 더 쉬움은 물론이다. 일체형 부품이 대량생산되는 시스템에서는 일체형 부품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 고장 난 부품만을 수리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올바른 표준화로 여기는 것 같고, 반대하는 측에서는 잘못된 획일화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교과서 내용이 제일 중요할 텐데 그것보다 국정이냐 아니냐를 더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의식의 표준화이기 때문이다. 표준화는 자기구속적임을 숙지해야 한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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