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기 바닥, 3월이었거나 2분기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마음은 벌써 봄인데 몸엔 아직 찬바람'.

최근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정작 실물지표의 개선 속도는 더디다. 몇 달 후 경기를 가늠케 하는 경기선행지표조차 엇갈린다.

17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2005년 경제전망'엔 이런 고민이 여실히 반영됐다. KDI는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3%에 머물고 연간으로도 4%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말 발표한 수치와 같은 수준으로 최근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앞 다퉈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기 순환 주기로 보아도 바닥은 지난 3월이었거나 늦으면 2분기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아직 경기 바닥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시차는 있지만 호전된 심리지표가 2분기 이후엔 실물지표에 반영될 것이란 주장이다. 따라서 3, 4월 실물지표가 나오는 4월 말 이후를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다.

◆ 심리와 실물의 괴리=심리지표는 지난 3월 이후 기준치인 100을 대부분 넘어섰다.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나빠질 것으로 보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물지표는 여전히 엇갈린다. 대표적인 소비지표인 도소매판매는 지난 2월 1년 전보다 1.6% 감소했다. 산업생산은 -7.3%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4%로 지난해 말보다 높아졌다.

KDI는 호전된 심리지표가 실물지표의 개선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로 시차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심리지표인 소비자기대지수와 실물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본 결과 3~9개월 정도 시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각종 심리지표가 기준치인 100을 넘어선 게 3월 이후인 만큼 실물지표가 좋아지는 것도 2분기 말 이후나 돼야 한다는 얘기다. 심리는 실물보다 증폭되는 경향도 있다. 실제 소비자기대지수가 10%포인트 상승했을 때 3개월 후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6%포인트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기대만큼 실적이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 주가.부동산값도 엇박자=지난해 말 이후 급등한 주가는 각종 심리지표가 기준치인 100을 넘어선 3월 초 올 들어 최고점인 1025.07을 기록한 뒤 뒷걸음질치고 있다. 재건축 단지와 판교 인근을 중심으로 들먹이던 부동산값도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책에 눌려 주춤하고 있다.

KDI는 이 같은 주가와 부동산값의 엇박자도 경기에 대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주가와 부동산값이 실물지표를 훨씬 앞질러 오른 게 심리지표를 급속하게 호전시켜 실물지표와 괴리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가는 경기에 선행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연초에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은 경기가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신호라는 주장도 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오름세가 한풀 꺾였지만 대세 상승이란 흐름이 반전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 양극화의 착시현상=올 초 정부가 경기 회복의 조짐으로 제시한 대표적인 속보지표는 백화점 매출과 신용카드 사용액이다. 그러나 이들 지표만 보고 전체 경기의 흐름을 가늠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중산층 이상이 주로 이용하는 백화점은 매출이 늘었지만 재래시장이나 상가는 매출이 제자리 걸음이거나 줄었기 때문이다.

기업과 가계 소득의 양극화도 경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가계소득(노동자 임금과 자영업자들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9% 늘었다.

가계소득은 최근 4년 동안 연평균 1.7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6%로 가계소득 증가율을 훨씬 앞질렀다. 반면 지난해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30%에 육박했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빚 갚거나 예금으로 쌓아두고 있으니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 고유가.환율 하락도 부담=정부는 지난해 이후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으나 원화환율이 함께 떨어져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완화됐다고 설명해 왔다. 석유를 수입하는 업체 입장에선 유가 상승분만큼 원화 값이 올라 원화 기준으로 보면 크게 손해 본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KDI의 분석은 이와 사뭇 다르다. 환율이 5% 떨어지고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0.48%포인트 떨어지고 경상수지 흑자는 77억 달러가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환율 하락으로 민간소비가 늘어나지만 경상수직 흑자폭이 훨씬 더 많이 줄어 성장률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 기업 투자 살아나야=KDI는 하반기로 예정된 종합투자계획이 경기의 불씨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못 될 것으로 평가했다. 올해 집행될 투자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소비가 살아나고는 있지만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 속도가 더뎌 큰 폭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선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의 설비투자가 회복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기업이 임금.배당이나 설비투자로 돈을 풀어야 민간소비도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이것이 다시 기업의 매출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