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비야의 길!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자국이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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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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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글 잘 쓰는 비결을 좀 알려주세요.”

 요즘 들어 부쩍 이런 메일을 많이 받는다. 쑥스럽고 난감하다. 비결은 무슨 비결인가? 그걸 안다면 글 쓸 때마다 밤새도록 괴로움에 머리를 벽에 찧고 가슴을 쥐어짜겠는가? 책을 9권이나 내고 20년 넘게 이런저런 칼럼을 쓰고 있지만, 내가 글을 잘 쓴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멋진 글이나 문장을 만나면 너무나 부러워서 읽고 또 읽는다. 나도 외우고 싶을 만큼 좋은 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때리는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지난 수십 년간 갖은 애를 쓰고 있기는 하다.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이 받은 메일의 답장으로 한비야식 글쓰기 비법(!)을 전격 공개해 볼까 한다.

 동서고금 어느 글쟁이라도 같은 말을 할 거다. 좋은 글쓰기의 기본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거라고. 나는 여기에 다행(多行), 많이 다니고 다록(多錄), 많이 기록하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집에 있는 똘똘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낫다지 않는가? 몇 년간의 세계 일주 여행부터 한두 시간이면 족한 동네공원 산책까지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온 나’는 뭐가 달라도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렇게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잘 적어 놓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자국이 낫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일기장과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그날의 주요 사건·사고를 꼼꼼히 기록한다. 뭔가 퍼뜩 떠오르면 방금 받은 영수증이나 식당 냅킨에라도 바로 적어놓는다. 50살이 넘어가니 깜박증까지 생겨 그야말로 적자생존, 적어놓아야 산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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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록이란 감성의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기억 속에는 사건의 뼈대만 남지만 기록 속에는 향기와 온기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꼬마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널브러져 있는 구호현장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는 차를 보면서 저 먼지가 다 밀가루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그 순간, 그 느낌을 그 자리에서 메모장에 적어놓지 않았다면 그 안타까운 감정은 사라지고 그 지역에 몇 톤의 식량을 배분했다는 사실만 남았을 거다. 이런 일기장과 메모 수첩이 없었다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다.

 두 번째 비법은 쓸 내용을 먼저 말로 풀어 보는 거다. 내가 쓰는 글은 거의 대부분 가족·친구에게 혹은 강의 중에 수없이 한 말이다. 얘기를 직접 들었던 사람들의 갖가지 반응을 떠올리면 쉽고 편하게 써진다. 말이 고스란히 글로 변해서일까, 내 글은 아주 평이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언문혼용체’ 혹은 수다 떨 듯 쓴다고 ‘수다체’라고 부른다. 아무튼 나는 전달이 잘 되는 주제, 잘 알고 있는 주제,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주제에 대해서만 쓴다. 아니, 그 외에는 누가 부탁해도 쓸 수가 없다.

 일단 원고가 완성되면 그 글을 소리 내서 여러 차례 읽는다. 글이란 결국 운율이다. 그래서 한 문장 안에 고저와 장단이 잘 섞여 있어야 자연스럽고 전달이 잘 된다. 큰 소리로 읽어 보면 이런 점이 잘 드러나면서 껄끄럽거나 어색한 부분을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 비법은 마감의 힘을 최대로 이용하는 거다. 나는 마감 직전까지 쓰고 고친다. 마감이 임박해야 능력의 최대치가 나오기 때문이다. 담당자들은 마감시간에 딱 맞춰 원고를 보내는 나를 미워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올수록 글이 잘 써지는데 어쩌겠는가? 욕을 먹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수밖에.

 단행본일 때는 더욱 그렇다. 초교지, 재교지는 물론 인쇄 직전의 교정지에도 붉은 펜으로 수없이 고쳐서 ‘딸기밭’을 만들어 놓는다. 이미 나온 책을 20쇄가 넘도록 고치다가 편집자에게 사실이 틀렸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쓴 적도 있다. 이 칼럼도 번번이 마지막 순간까지 담당자에게 단어를 다른 걸로 바꿔 달라, 제목에 쉼표를 넣어 달라 등등 문자로 카톡으로 자잘한 부탁 하며 밉상을 떨고 있다.

 이렇게 애를 쓴다고 매번 내 글이 만족스러운 건 물론 아니다. 그래도 원고 보낼 때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달달 떨리면서도 스스로에게 ‘있는 힘을 다했어?’ 물을 때 ‘그렇다’고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다음에 더 잘 쓰면 되니까. 글쓰기란 어차피 커다란 쇳덩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다. 힘겹고 더디긴 하지만 애쓰는 만큼 반드시 좋아진다고 굳게 믿는다.

 글쟁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단언컨대 마감의 힘으로 산다. 마감은 영어로 deadline, 즉 넘어가면 죽는 선이다. 죽지 않으려면 그 시간 전에 원고를 써내야 한다. 이 원고 마감은 오늘 오전 11시다. 지금은 새벽 네 시 반. 아침 9시 반 수업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전에 다 써야 한다. 딱 다섯 시간 남았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다. 사람 살려!!!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세계시민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