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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페셜 칼럼 D

어떤 이웃이 여러분 옆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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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속된 말로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범죄자들은 선천적으로 위험한 괴물들이고,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경우도 일부 존재하는 것은 냉엄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자가 구제불능의 괴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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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민희]

히스 형제의 책 ‘스위치’에 어린 자녀를 구타하여 골절상을 입히는 등 학대한 부모들을 대상으로 행동치료를 수행한 사례가 나온다. 오클라호마 대학 베벌리 펀더버크(Beverly Funderbu가) 교수 팀이 실행한 ‘부모-자녀 상호작용 치료(PCIT: parent-child interaction therapy)'다. 처음 부모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녀와 매일 단 5분씩만 놀아주는 것이었다. 그 시간 동안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전화도 받지 말고, 뭘 가르치려 들지도 말고,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은 명령을 내려서도 안 되고, 비평을 해도 안 되고, 질문을 던져서도 안 된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부모도 따라서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부모의 크레용을 빼앗으며 “나 이거로 할래!”하고 외치면 마음껏 쓰라고 내주고 다른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심술궂게 또 부모가 쓰는 크레용을 못 쓰게 하면 따른다. “네 말이 맞아. 이 색은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 치료법은 부모들이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어지도록 만든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부모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도 더 이상 싸울 거리가 없어진다.

아동 학대 부모들에게 이 5분은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자기통제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동 중심 상호작용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칭찬하는 법,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 110명의 학대 부모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절반은 일반적인 분노 조절 요법 치료를, 나머지는 위와 같은 부모-자녀 상호작용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3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전자의 60%가 다시 아동학대를 한 반면, 후자의 20%만이 다시 아동학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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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더버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육체적으로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들도 정상적인 부모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들은 방법과 생각이 잘못됐을 뿐이다. 그들은 세 살짜리 자녀가 앞마당에서만 놀라는 말을 무시하고 거리로 나가면 그 아이가 못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 살짜리 아이가 부모의 지시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 혹은 그런 종류의 충동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아이가 순종적이지 않고 위험하니 벌을 주어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동학대 부모 중 상당수는 선천적인 괴물이어서 아이를 때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너 살짜리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 교육 방법에 대해 무지했다. 제대로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교육받자 그들 중 80%가 아동학대를 멈추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독방에 갇힌 무기수와 영문학 교수의 10년간의 셰익스피어 수업 이야기,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로라 베이츠 저)’다.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저자가 25세이던 1983년, 시카고 쿡 카운티 단기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시작해 2010년까지 약 30년간 여러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를 강의했던 실화를 기록했다.

저자는 2003년부터는 가장 위험한 죄수들을 장기간 격리 수용하는 ‘감옥 안의 감옥’인 슈퍼맥스(supermax)에서 독방에 갇힌 죄수들에게 강의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10대에 살인죄를 저질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고 있는 무기수 래리 뉴턴을 만난다. 그리고 10년간에 걸친 그를 비롯한 흉악범들과의 셰익스피어 수업이 시작된다. "대다수 살인은 열정적으로 계획한 게 아닙니다. 대다수는 그저 상황에 따라 멍청하게 저지른 행동일 뿐이에요."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의 상당수가 약간의 영향만 있어도 다르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경찰관 살해범의 말이다. 내 재판 경험으로도 그렇다. ‘멍청하게’라는 표현이 정말로 적절하다. 악마 같은 흉악범이 계획적으로 벌이는 살인은 드물다. 평범한 사람이 사소한 분쟁 때문에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저지르는 범행이 더 많다. 심지어 동네에서 막걸리값 내기 윷놀이하던 50대가 옆에서 자꾸 귀찮게 훈수하는 이웃을 때려 숨지게 한 일도 보았다.

비행청소년이 많은 고등학교에 10대 때 살인을 저지른 죄수들의 충고를 녹화한 동영상을 상영하자 그 어떤 교사의 이야기도 듣지 않던 소년들이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도 있다. 동영상을 본 소년들의 반응은 이렇다. "형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어떤 교사도 그 말을 더 낫게 얘기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얼마나 신세를 망칠지 당신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거죠. 당신들이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면 나는 잠을 잤을 거예요. 그래서 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고 말하려는 거예요." 누구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은 막나가는 소년들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인다. 공감의 힘이다.

저자는 살인 등으로 종신형을 받은 소년 죄수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창작 각색 작업을 맡겨 보았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로미오처럼 착한 아이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압박하는 ‘또래 집단의 압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이고, 경찰에 체포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연극을 공연한 후 소년수들은 말했다. "저는 14살에 살인으로 교도소에 들어와 199년 형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17살에 교도소에 들어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우리는 여러분들이 로미오의 잘못에서 배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잘못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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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가장 열성적이고 뛰어난 제자로 영문학자들이 놀랄 정도로 셰익스피어에 관한 독창적인 글들을 쓴 무기수 래리 뉴턴. 오랜 수업의 끝에 그가 남긴 말이다. "제가 저지른 모든 폭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사고방식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어요. 이제는 남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제 지적 능력이나 뭐 그런 걸로요." 소외계층 청소년들이 그리도 쉽게 범죄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는, 결국 자기 소속 집단 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던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킬 보다 나은 집단에의 소속감을 제공해주지 못한 결과다.

소년범들의 최초 범죄경력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던 저자는, 7세, 8세 때 범죄적 경험이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놀란다. 그러자 한 소년범이 요약해 준다. "7살부터 10살까지의 아이의 경험이 10대와 성인으로서의 행동을 결정해요." 소년수 중 한 명은 자주 전학을 다니던 아이였는데 가벼운 장난 몇 건 때문에 교사의 미움을 샀다. 교사는 그를 교실 뒤쪽 칸막이 뒤에 둔 채 학기를 보내게 했다. 소년은 나중에 거리로, 마약으로, 폭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소년수는 말했다. "학생을 교실 뒤쪽 칸막이 뒤에 두면 그가 자라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리라." 저자와의 셰익스피어 수업을 통해 놀라운 지적 성장을 이룩한 무기수 래리 뉴턴이 학술지에 기고한 에세이가 있다. 형벌의 목적과 방법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위해서 우리가 왜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가? 나쁜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럼 우리는 나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격리된 집단의 사람들에게 굳이 나쁜 일을 하려고 찾아 나서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선행의 수혜자가 누구든지 간에 선한 일을 찾아서 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중략) 수많은 죄수들이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 될 겁니다. 어떤 종류의 죄수가 여러분 옆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에게는 그들이 어떤 이웃이 될 수 있게 도와줄 힘이 있습니다. 교육만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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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민희]

내 재판 경험상 범죄자 중 다수는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알콜 중독에 빠져 매일 아내와 아이를 구타하는 아버지, 못 견디고 가출한 어머니, 각종 납부금을 내지 못한다고 모욕을 주는 학교... 이들을 더 오래 교도소에 가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제대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교도소는 교육과 치료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들 모두를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고, 이들 중 대부분은 언젠가는 이 사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