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美展 여는 오노 요코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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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멋대로 치솟은 머리카락 밑으로 뽀얀 피부에 동그란 까만 안경을 쓴 얼굴이 드러났다.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옷을 입은 자그마한 몸집의 오노 요코(小野洋子.70)가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 들어서자 관람객들 사이에 탄성이 솟았다.

일흔 살 노인이라기엔 너무 젊어 보이는 그는 "50년 전부터 이 자리에 올 생각을 했다"는 애교스러운 말투로 처음 한국을 찾은 인사를 대신했다.

21일부터 9월 14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오노 요코(YES YOKO ONO)전'을 위해 서울에 온 그는 영국의 전설적인 팝그룹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의 여자'로만 알려진 한계를 벗어나고 싶은 듯했다.

삼성미술관이 전시 개막에 앞서 마련한 2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사생활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같은 예술가로서 존 레넌과 주고 받은 영감.영향에 대한 물음에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일본 출신의 전위예술가이자 음악가로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명하고 회고하는 이번 순회전이 얼마나 훌륭하게 이뤄졌는가에 대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제 전시장을 둘러보며 미국이나 유럽과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서구인보다 훨씬 섬세하고 동양적인 정서를 반영한 설치는 새삼 내가 40년을 일군 작품 속에 깃든 아시아의 혼을 자각하게 했다. 미국에서 손꼽는 여섯개 미술관을 돌았지만 이번 전시야말로 최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는 피와 같다. 아시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고, 예술로 세계와 대화하는 우리는 일심동체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한다."

세계의 연인으로 빛나던 존 레넌을 한 순간에 사랑에 빠뜨린 여성답게 오노는 목소리와 눈빛이 당차고 또랑또랑했다. 황인종 여성에게 쏟아지던 백인 남성 사회의 거센 비난과 질시를 그는 자신의 작품 제목처럼 '그럼요, 네(YES)'로 타넘었다. 만사를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사고, 만인을 끌어당기는 참여와 개입의 예술 정신은 '반(反)아시아, 반(反)페미니즘'을 넘어서 세계 평화를 일구는 참여 예술가로서의 오노의 성격을 분명하게 했다.

"'예스'는 사랑과 평화를 갈구하며 세상과 인생에 화답하는 소리다. 예술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건전한 대화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사랑이 부족한 곳을 채우는 것이 내 작품이다.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듯 내 작품이 여러분 모두와 접목해 큰 사랑과 생각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자신을 하찮다 버리지 말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어가는 씨앗이 되도록 평화를 상상하자."

자신의 최고 작품을 무엇이라 여기느냐는 질문에 오노는 "앞으로 나올 것"이라며 그 자신감을 에둘러 이렇게 말했다. "쉰살이 됐을 때 나는 '내가 늙었다'고 한탄하기보다 '지난 50년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21일 오후 2시 삼성생명 국제회의실에서 관람객들과 만나 자신의 작품 세계를 들려준다.

정재숙 기자

<사진 설명 전문>
20일 오후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오노 요코'전 개막식에서 오노의 대표작인 '예스(YES) 회화'를 감상하고 있는 오노 요코와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왼쪽부터).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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