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텔링] 한국 유학갔다 뇌사 … 4명에게 새 생명 주고 떠난 우리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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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딸 우위안신(吳元馨·가명·25)! 오늘(7일) 아침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터)에서 화장(火葬)을 앞둔 너를 마지막으로 보고 있어. 관 속에 누워 고요히 눈을 감은 너. 그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너를 끝내 저세상으로 떠나 보내면서도 못난 엄마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네가 뇌사 상태에 빠진 지 261일째인 어제. 아빠와 엄마는 인공호흡기를 뽑는 데 동의했어. 너는 이제 지긋지긋한 침대에서 벗어나 긴 여행을 떠나겠지.

 지난 1월 19일이었지? 지난해 3월부터 한국 대학에 유학 중이던 네가 서울 혜화동의 한 산부인과에서 의료사고를 당한 게. 어려서부터 한국을 유난히 좋아해 유학 갈 때 그렇게 행복해했었는데….

 엄마는 유학을 떠난 지 10개월 만에 서울대병원 응급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널 보곤 정신을 잃고 말았어. 경찰들 말이 의사가 포도당수액을 과다 투여해 네가 뇌사에 빠졌다는 거야. 다행히 의료사고 부분은 과실이 명백해 너를 그렇게 만든 의료진은 모두 처벌을 받았어.

지난달 10일 이모(43·여) 원장은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대. 간호조무사 이모(47·여)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고. 판사님이 이렇게 말했다더구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하고 피해자 생명에 현저한 위험이 발생했다. 진료기록을 변조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

 올해 겨우 스물다섯 살인 우리 외동딸….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엄마와 아빠는 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어나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단다. 천진하게 웃으며 “엄마·아빠, 나 배고파” 하고 말하는 꿈을 꾸기도 했지.

그런데 시간은 냉정하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네 상태는 더욱 나빠졌어. 의료사고 판결이 난 직후부턴 주변에서 조심스레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지.

물론 처음엔 엄마·아빠도 펄쩍 뛰었단다. ‘씩씩한 우리 딸 살아 돌아올 게 분명한데. 어디서 함부로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지.

 하지만 동신교회 사람들과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지. “의료진 말이 우위안신이 깨어날 가망은 사실상 없다고 하네요. 장기기증을 해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방법도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아무 연고도 없이 한국에 온 우리를 보듬어주고 돌봐준 고마운 분들이 어렵사리 그런 얘기를 꺼내는데 엄마·아빠는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어.

 그런데 추석 하루 전쯤 아빠가 네가 중국에 있을 때 야채 파는 할머니 물건을 몽땅 사 갖고 왔던 얘기를 꺼내더라. “할머니가 너무 안돼 보여 남은 걸 전부 사왔다”고 네가 했던 말 기억나지. 그러면서 아빠가 “늘 베푸는 걸 좋아했던 우리 딸도 아마 장기기증을 반대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 장기기증을 하든 하지 않든 결국 화장하면 재로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이왕이면 우리 딸이 새 생명을 주고 떠나게 해주자는 말과 함께.

 엄마는 너의 아름다운 결말을 생각했어. 그러니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병원 측은 “중국인(한족)이 한국에서 장기기증을 한 건 처음”이라고 했어. 네 심장과 간, 신장 두 개가 기증될 거라고도 했지. 네가 한국인·중국인 등 모두 네 명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

 사랑하는 딸 우위안신! 엄마는 며칠 전 서울 시내에 처음 나가봤어. 서울이라곤 네가 261일간 줄곧 누워 있던 서울대병원 응급 중환자실과 병원 근처에 있는 동대문 동신교회밖에 몰랐던 엄마인데 말야. 적막한 병원과는 달리 서울은 참 소란하고 화려한 곳이더구나. 너는 사경을 헤매는데 거리는 분주하기만 했어.

 그날 엄마는 네게 마지막으로 입힐 옷과 신발을 골랐어. 수의(壽衣) 대신 여대생에게 어울릴 만한 옷으로 네 마지막을 꾸며주고 싶었어. 네가 치마를 좋아할까, 바지를 좋아할까. 먼 길을 떠나는데 짧은 팔은 춥겠지. 눈물이 범벅인 채로 마지막으로 네가 입게 될 옷을 고르고 또 골랐단다.

 어젯밤 힘겹게 장기이식 수술을 마친 너를 떠올리면 엄마 가슴은 무너진다. 수술실 앞에서 “왜 엄마를 불러놓고 일어나질 못하느냐”면서 오열하기도 했지. 이제는 마지막이 될 네 예쁜 얼굴과 두 눈, 작은 입에 가만히 엄마 얼굴을 맞대 본다. 병원 분이 말하길 오랜 시간 누워 있던 탓에 발이 퉁퉁 부어 엄마가 사 온 단화 구두는 신을 수가 없다고 해. 그래서 신발은 발 밑에 가지런히 놓았어. 저세상으로 가는 길에 혹시라도 발이 아프거든 꼭 신어야 해!

 마지막으로 네가 좋아하던 알사탕을 입에 넣어줄게. 엄마·아빠 생각하면서 조금씩 아껴 먹어. 자랑스러운 딸 우위안신! 네가 엄마·아빠의 딸이어서 너무 고마웠어. 다음 생애에도 우리 딸로 태어나주길 바라. 잘 가, 하나뿐인 우리 딸…. 하이쯔, 짜이젠(孩子, 再見·아가야, 안녕)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이 기사는 지난 7일 딸의 화장을 앞둔 어머니가 작성한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중국인 우위안신의 부모와 서울대병원 관계자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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