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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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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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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문화평론가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5분 이상 고민한 적이 있는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고를 때 너무 고민한 나머지 음료수를 선택하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린 적이 있는가.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마음에 드는 채널이 영 없어서 차라리 텔레비전을 꺼버린 적이 있는가.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려 했다가 비슷비슷해 보이는 물건이 너무 많아 제대로 고르지도 못하고 구매를 포기한 적이 있는가. 내가 이미 구매한 옷이 다른 매장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걸 발견한 적이 있는가. 이런 일을 여러 번 경험했다면 당신은 ‘선택중독증’이라는 병 아닌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불치병은 아니지만 난치병임에는 분명한 이 선택중독증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감염될 수 있는 마음의 질병이다.

 이 선택중독의 뿌리에는 강력한 환상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선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망상, 철저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그에 따른 만족스러운 결과가 보상으로 따라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도 소비를 통해 인생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더 나은 선택을 통해 좀 더 편리해질 수는 있겠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불행이 행복으로 형질 전환되지는 않는다. ‘그때 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을 텐데!’라는 식의 낭만적 환상도 부질없다. 아무리 멋진 사람을 선택해도 그를 통해 이 세상 모든 불행의 ‘경우의 수’를 빠져나갈 수는 없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기계적인 모자이크라기보다는 예측불능의 변수들과 통제불능의 욕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우연을 뛰어넘는 의지와 노력이 화학반응해 이루어지는 미지의 화합물에 가깝다. 좋은 것들만 모여 있어도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나쁜 것들만 모여 있어도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인간은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결과’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

 이 끝없는 선택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완전한 해결책은 없지만 나 역시 지극히 귀가 얇아 오랫동안 선택중독증을 앓아온 사람이기에 소박한 노하우를 지니게 되었다. 첫째,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이런 피곤한 환상과 ‘인생 한 방’이라는 식의 한탕주의가 결합하면 끝없는 ‘선택의 도미노적 타락’이 기다리고 있다. 소비나 투자를 향한 끝없는 선택에 자기 인생이라는 소중한 담보물을 내걸고 끝없는 도박을 벌이며 지칠 줄도 모르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고, 나에게 어울리며, 내가 오래오래 실천할 수 있는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성공하는 사람들의 100가지 습관’보다는 ‘타인의 신의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듬직하고 해맑은 눈빛’을 삶의 지표로 삼는 것이다. 이런 삶은 선택중독으로 인한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다. 내 삶의 결정권을 ‘나’ 아닌 다른 무엇에서도 찾지 않아야 진짜 해방이 시작된다.

 셋째, ‘나’라는 존재를 투자의 대상이나 수확의 대상으로 상품화하지 않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라’는 식의 상술에 ‘나’를 내줘서는 안 된다. ‘N포세대’나 ‘흙수저’ 같은 자조적인 명명법에 결코 스스로의 삶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함부로 우리의 삶을 그런 식으로 명명할 수 없도록 단단히 마음의 무장을 해야 한다. ‘무언가가 있어야 행복한 삶’이 아니라 ‘그것이 없어도 괜찮은 나’를 단련해 나가야 한다. 재산이나 권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행태야말로 ‘빈약하고 척박한 자아’의 증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잘 보일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준엄한 눈초리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내 방의 인테리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오늘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어떤 자동차나 주택을 구매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해 보자. 상품의 소비로 마음의 허기를 채울 것이 아니라 경험과 인연의 확장으로 영혼의 결핍을 채워야 한다.

정여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