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 장관 황우여 소극적 … 집필 시한 10개월 남아 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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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7일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해 “국정화 여부는 최종 결정된 게 없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그간 여러 자리에서 국정화 여부 결정에 대해 심적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정화 여부는) 별도 기자회견 없이 행정예고 형식으로 발표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행정예고는 교육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한다. 지난달 16일엔 기자에게 “교과서 구분 고시는 차관 소관이어서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없더라”는 말도 했다.

통합교과서 내주 결정하는 교육부
황우여, 총선 문제 걸려 신중 모드
“국정화는 후진국 제도” 논문 썼던
김재춘 차관도 나서기 힘든 처지

 김재춘 교육부 차관 역시 이번 결정에서 총대를 메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는 2009년 영남대 재직 중 ‘교과서 검정체제 개선방안 연구’라는 논문에서 ‘국정교과서는 독재 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썼다. 이 때문에 최근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차관이 돼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것이냐”는 말을 들었다.

 황 장관은 8일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야당 의원들도 벼르고 있다. 이와 관련,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장관 자신이 내년 총선 공천 문제도 걸려 있어 차관에게 결정을 미루고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음주 초 최종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 또는 통합교과서 발행이 확정되면 이 교과서는 2017년 3월 중·고교 보급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선 이달에 시작하더라도 2017년 2월까지 1년5개월 안에 교과서 제작을 마쳐야 한다. 교육부의 ‘교과서 개발체제 방안’대로 연구학교 시범 적용을 거치려면 10개월 뒤인 내년 2학기 시작 전에 교과서 집필을 마쳐야 한다. 제작 일정이 촉박하다. 이 때문에 이념 편향 교과서는 아니더라도 날림 교과서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교과서 편찬 과정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역사학계가 국정화에 대해 집단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집필진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가톨릭대 정연태(국사학) 교수는 “국정 제작에 참여하면 후대 역사가에 의해 어용(御用) 학자라는 평가를 받을 텐데 우수한 학자 중 누가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국정교과서 제작을 맡을지도 미지수다. 본지 취재 결과 전·현직 국편 위원장 8명 중 국정화를 지지한 이는 한 명도 없고 5명은 반대했다. <중앙일보 9월 14일자 14면>

 익명을 요구한 한 국사학자는 “새누리당이 ‘좌편향 등의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는 현재 교과서 내용은 이미 교육부의 수정을 거쳤다”며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가 국정교과서로 가야 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시윤·백민경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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