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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담 너머 집안 찍고 우체통에 쓰레기 … ‘무례한 유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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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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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진 찍지 말라고. 사람 사는 집이야.” 지난 4일 오후 1시쯤 서울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집주인 서모(54·여)씨가 소리쳤다. 한복을 입은 20대 중국인 2명이 사진을 찍다 말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서씨가 제지하면서다. 서씨는 “그나마 사진만 찍는 건 양호한 경우”라며 “초인종을 누르거나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인 몰리는 서울 북촌 몸살
주민들 “사생활 침해 피해 심각”
관광버스 주택가 불법 점령도 골치

 중국 국경절 연휴(1~7일)를 맞아 20만여 명의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가 방한하면서 북촌과 명동 일대가 사생활 침해·소음·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강배(51) 가회동 주민자치위원은 “예전엔 가이드가 통제하는 단체 그룹이 관광 명소만 둘러보고 갔지만 최근에는 친구·연인끼리 오는 유커들이 거리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니 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 늘어났다”며 “셀카봉으로 담장 너머 집 안 내부를 찍는가 하면 문이 조금만 열려 있으면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물을 뽑거나 쓰레기를 투척하고 가버려 주민들의 텃밭도 엉망이 됐다. 텃밭 입구에 ‘눈으로만 보세요’ ‘음식물 쓰레기 버리지 마!!’라는 경고문을 붙여 놨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한다. 한옥마을에 거주하는 김모(57)씨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했다.

 주차 문제도 고충이다. 관광버스들이 주차지역을 점령해 주민들이 차를 세우지 못하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이 위원은 “주차공간을 점령한 관광버스들 때문에 나도 길가에 주차했다가 과태료를 70만원이나 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주차된 버스에 가려 버린 북촌의 한 카페 입구엔 ‘관광버스 주차 NO!!’라는 안내 글이 붙어 있었다. 종로구청 측은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버스를 이동시키거나 과태료를 물리고는 있지만 경력이 오래된 운전기사들이 ‘10분만 있다가 간다’며 단속을 피한 뒤 30분 넘게 머무르는 꼼수를 부리는 것까지 통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유커들이 많이 찾는 명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세계·롯데 백화점 앞 대로는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명동파출소 관계자는 “어느 중국인 관광객이 쓰레기를 우체통에 버려 지적을 했더니 ‘(의미를) 모르겠다’며 가버리더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남재경(54) 서울시의원은 “서울시가 북촌을 홍보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여행사 등 몇몇 기업이 이익을 얻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큰 피해를 겪는다”며 “그럼에도 이에 대한 보상이 전무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유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다소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유커가 국내에서 쓰고 간 돈은 약 14조원으로, 1인당 평균 23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한편 중국도 자국 내 주요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탈법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에는 베이징 자금성 내 어화원(御花園)에 낙서가 발견돼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다. 또 지난 3일엔 자금성 측이 유물 낙서, 음주, 암표 판매상 등 2500여 명의 블랙리스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박병현 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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