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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뒤지는 아이에 억장 무너져 … 도움 망설이면 안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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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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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이 지난 7월 케냐 투루카나에서 생후 6개월인 메샥 에코엘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이 아이는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위급한 상태였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

최불암 어린이재단 후원회장
지난 여름 9일간 케냐 봉사 다녀와
오랜 가뭄 지쳐 말도 제대로 못해
기회 되면 북녘 어린이 돕고 싶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국민 배우’ 최불암(75)은 본인을 이렇게 소개하는 명함을 건넸다.

그는 요즘에는 연기자로서보다 비정부기구(NGO) 후원자로서 하는 일이 더 많다고 했다. 그와 기부 활동의 인연은 30여 년 전에 시작됐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그가 연기한 김 회장은 아들(금동)을 입양해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어린이 후원에 나섰다.

 그는 지난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8박9일간 케냐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가뭄으로 식수와 식량이 부족한 시골 마을에 물탱크와 수돗가를 설치하는 일을 돕는 게 주요 방문 목적이었다. 영양실조와 질병, 노동 착취에 시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긴급구호도 실시했다. 최씨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기부를 위한 ‘마지막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말했다. KBS는 10일 그의 케냐 봉사활동을 담은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오지에서의 봉사활동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나이가 적지 않아 걱정이 꽤 있었다. 열대병 예방을 위해 주사를 다섯 대나 맞고 녹다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고 엄청난 성장을 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도움을 줄 차례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멀리 갈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점도 의지를 굳게 하였다.”

 -케냐 아이들을 직접 보니 어땠나.

 “수도 나이로비 근처의 쓰레기장에 제일 먼저 갔다. 가기 전엔 예전 한국의 난지도를 떠올렸지만 막상 가보니 우리의 폐기물은 정말 ‘부자 쓰레기’였다. 비위가 상하는 인조가발 등이 썩어가는 곳에서 먹을 걸 찾는 아이들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투루카나도 큰 차이는 없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메마른 마을에는 기운 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만 보였다.”

 -언제가 제일 가슴 아팠나.

 “쓰레기장에서 만난 열두 살 마이나의 눈망울이 기억에 선명하다. 엄마를 돕기 위해 하루종일 뒤졌지만 아무것도 못 찾았다며 시무룩해 했다. 어린이재단이 만들어준 수돗가를 보고 좋아하면서도 힘이 없어 말을 제대로 못 했던 투루카나 아이들도 떠오른다.”

 -케냐에 다녀오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

 “눈물도 사치일 정도로 어려운 곳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때때로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 케냐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이들도 우리가 도울 아이는 여전히 많다는 점을 알고, 평소 생각 없이 쓰고 버리는 물·쓰레기를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예전에 꽃제비(먹을 걸 찾아 헤매는 북한 어린이들)가 나오는 뉴스를 보고 이들을 꼭 돕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방북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불안한 정세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우리 곁의 북녘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맨발로도 나설 수 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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