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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얘기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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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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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논설위원 겸
고용노동선임기자

영국의 경영자 단체가 뿔났다. 정부가 파업 근로자의 빈자리를 파견근로자로 대체하는 걸 허용하려 해서다. 노동개혁의 일환이다. 이렇게 되면 파업 기간 중에도 생산을 계속할 수 있다. 노조로선 파업 효과가 없어지니 시쳇말로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우군이 등장했다. 파견업체 경영자 단체인 채용고용연합(REC)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발끈했다. ‘파견 규제 풀라’ ‘대체근로 허용하라’는 경영계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한국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케이트 슈스미스 REC 정책의장은 최근 BBC 인터뷰에서 “파견근로자를 노사관계가 악화한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건 파견업체와 근로자, 파견을 이용하는 기업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가능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고객(이용업체)도 각 현장에 보낸 파견근로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파견근로자를 ‘땜빵’ 근로자로 여기지 말라’는 일갈이다. 노사관계는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지 손쉬운 압박정책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곁들여서다.

 눈앞의 이익보다 근로자 보호와 전체 고용시장을 생각하는 데서 늠름한 자태가 전해진다. 이게 한국과 영국 경제단체의 차이다. 파견근로자를 비용절감용 수단으로만 여기는 건 아닌지, 그래서 고용시장의 격차를 키운 건 아닌지. 우리에겐 없는 이타적 고민이 영국에는 있어서다.

 노동계 도 합리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독일노총(DGB)은 지난해 말 근로시간단축에 대한 정책보고서를 냈다. DGB는 “정규직 남성 근로자는 회사의 요청에 따라 주당 평균 4.4시간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 정규직은 이를 스트레스로 여긴다. 반면 비정규직은 일하는 시간을 늘려주길 원한다. 임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DGB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요구에 따라 균형감을 갖춘 유연한 근로시간제 운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비정규직에겐 더 일해 더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도록 근로시간을 배려하자는 얘기다. 한마디로 근로자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자는 뜻이다.

 우리 노동계 같으면 이중구조화라며 난리를 칠 일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나가는 방안에 “투쟁”을 외치는 판이니 말이다. 근로자가 원해도 비정규직의 고용기간(2년)을 못 늘리게 방어막도 견고하게 쌓고 있다. 근로자 개인의 사정은 안중에 없다. 일률적 집단주의가 산업현장 위에 있는 천동설적 발상이 아직도 통한다는 게 안쓰럽다.

 정부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4일)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취임한 지 꼭 1년이다. 용접공에서 금속노조(IF Metall) 위원장을 거쳐 좌파연합정부의 총리에 올랐다. 그가 집권하자 국내 언론은 보수당 정부에서 추진한 노동개혁이 상당 부분 폐기될 것으로 예견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확 바뀌는 우리 상황을 어설프게 대입시킨 추정이다. 오히려 뢰벤 총리는 전 정부의 개혁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최근 스웨덴 ‘더 로칼(The Local)’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아빠 육아휴직을 독려하려 시행 중인 양성평등보너스(지원금)를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효과에 비해 정부에 과도한 재정부담을 지운다는 이유에서다. 육아는 돈으로 회유할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다. 정부 돈은 뒷주머니에 차고 근로자가 월급에서 조금씩 떼 적립한 쌈짓돈(고용보험)을 각종 지원금으로 빼쓰는 우리 정부는 이에 비하면 염치가 없다. 툭하면 지원금제도를 만들어 기업과 근로자를 회유하는 한국을 스웨덴 정부는 뭐라고 논평할까.

 노동개혁은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의 의식개혁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익만 좇는 경영계나 개인의 뜻보다 일률적 집단성을 내세우는 노동계, 염치를 모르는 정부 모두 고용시장에선 동의어다. 자기 것만 챙기는 철밥통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배려나 자제는 뒷간을 서성거리는 마려운 사람 얘기 정도로 여기니 말이다. 인간미 넘치는 시장은 강하다. 그게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면 안 될까. 일자리로 고민하는 청년도 그런 인간미라면 충분히 품을 수 있을 듯해서 하는 얘기다.

김기찬 논설위원 겸 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