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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매 고수들 “부실 상품도 돈 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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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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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는 최근 법원 부동산경매를 통해 수도권 지역 공급면적 59㎡형 다세대주택 3채를 낙찰했다. 최초 감정가가 1채당 5500만원이었지만 3채 모두 5번이나 유찰돼 경매 최저가가 1채당 1200만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A씨는 1채당 1250만원을 써 내 낙찰했다. 이 물건이 5번이나 유찰된 것은 유치권이 신고돼 있는 데다 대지 지분 없이 건물만 경매에 나와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낙찰 후 추가 소송 따르지만
잇단 유찰로 경매 최저가 낮아 매력
‘특수물건’ 낙찰가율 7월 70% 기록
권리관계 돌발변수 많아 주의를

 그런데 A씨는 현장조사 끝에 유치권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씨는 “유치권자를 상대로 인도명령을 신청해 이겼고, 이후 토지소유자와 협상을 벌여 한 채당 4500만원에 (토지소유자에게) 매각키로 했다”고 말했다. 3600여 만원을 투자해 불과 몇 개월 만에 1억원가량 수익을 올린 것이다.

 요즘 법원 경매시장에선 이처럼 유치권이 설정돼 있는 주택·상가와 같은 ‘특수물건’이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응찰자가 늘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크게 오르고 있다. 특수물건은 쉽게 말해 ‘부실’ 상품이다. 낙찰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빚(채권)이나 제3자가 점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물건으로, 낙찰자가 추가적인 소송이나 제3자(유치권자 등)와 협상을 벌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송을 하거나 낙찰가보다 더 큰 돈이 들기도 해 과거엔 기피 대상 1순위였다.

 그런데 최근엔 오히려 이 점이 투자자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유찰을 거듭하면서 경매 최저가가 낮아져 권리분석 등만 잘 하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법원경매정보회사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수도권 특수물건 낙찰가율은 올 들어 9월까지 66.5%로 지난해 말보다 3%포인트 올랐다. 지난 7월에는 월간 낙찰가율이 70.5%에 달했는데, 특수물건의 월간 낙찰가율이 70%를 넘은 것은 2008년 7월(70.4%) 이후 7년여 만이다.

 실질적인 경매 경쟁률을 뜻하는 평균 응찰자 수도 지난해 말엔 3.6명이었으나 지난달엔 3.9명으로 늘었다.

 부실 상품에 투자자가 몰리는 건 부동산 경기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경매 물건 자체가 귀해진 영향도 있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아파트·오피스텔 같은 전통적인 인기상품은 올 들어 낙찰가율이 100%에 달하는 등 매력이 떨어졌고 물건도 많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특수물건에 관심을 갖는 투자가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경매가 재테크 수단으로 대중화하면서 이른바 ‘고수’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각종 서적과 전문가의 강연이 봇물을 이루면서 일반 투자자도 과거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특수물건의 권리관계 파악에 능숙해진 것이다. 정충진 법원경매 전문 변호사는 “예컨대 유치권이 설정된 물건 중엔 실제로 유치권이 성립되지 않는 예가 많은데,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고수가 이런 물건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권리관계 파악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특수물건은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낭패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 변호사는 “낙찰 후 권리관계 해결을 위해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수년이 걸려 투자금이 묶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광석 로티스변호사사무실 변호사는 “서너번씩 확인을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게 특수물건”이라며 “경험이 많지 않은 경매 투자자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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