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평화’는 허상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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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평화’라는 가설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작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새 연구에 따르면 ‘민주적 평화’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민주 국가 사이에선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작다는 가설은 근거 없다는 새 연구 결과 나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의 과학자들은 새 연구에서 긴밀한 경제·무역 관계와 정부간기구 참여가 국가 간의 평화 유지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는 국가 간의 전쟁을 막는데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적 평화’ 가설에 상반되는 결론이다.

논문의 주저자인 오하이오주립대학 스카일러 크랜머 교수는 “전쟁 방지에 공동의 민주주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법칙으로 통했기 때문에 이번 연구 결과가 놀랍다”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민주적 평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연구가 많았다. 미국 대통령들도 민주적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그런 가설이 근거가 없는 듯하다.”

이번 연구는 향후 최대 10년 동안 국제분쟁을 예측하는 새 모델을 사용했다. 1948∼2000년 벌어진 모든 무력 충돌을 조사한 자료로 만든 모델이다. 연구팀은 새 모델의 국제분쟁 예측 정확도가 기존 모델보다 47%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크렌머 교수는 “미국 국방부는 세계의 상황을 적어도 5∼10년은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료주의적 무기력증과 예산 할당 문제로 군사적 충돌 수위의 변화에 1년 내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정책과 기획 측면에서 세계 정세를 그 정도 앞서 내다보면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의 모델은 영구적 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3가지 요인을 검토했다. 첫째는 민주주의 전파, 둘째는 무역을 통한 경제적 상호의존성 강화, 셋째는 유럽연합(EU)과 나토 같은 정부간 기구 참여였다.

이전의 연구도 이런 요인이 국가간 분쟁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했지만 이번 연구는 새로운 통계 기법을 사용했다. 3가지 요소를 각각, 그리고 전체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각 요인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지, 예를 들어 정부간기구 참여가 양국의 무역협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할 수 있었다.

크렌머 교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정부간기구 참여나 무역협정, 또는 민주정부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이 모든 요인을 아우르는 면에서도 비슷한 국가 집단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런 분류를 ‘칸트식 분열’이라고 불렀다. ‘영구평화론’을 설파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이론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런 국제적 파벌 사이의 골이 깊을수록 전쟁의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파벌 간의 분리가 심화될수록 세계는 더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새로운 통계 모델 개발에 협력한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수학자 피터 무차 교수는 “이런 국가 네트워크가 분열에 얼마나 취약한지 측정했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그런 수학적인 취약성이 전쟁 증가에 확실한 영향을 미쳤다.”

연구팀은 특정 시기의 그 국가집단들을 측정함으로써 1∼10년 안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전보다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사소한 무력 충돌까지 포함하는 전쟁의 광의를 사용했다. 관련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실렸다.

글=뉴스위크 ADITYA TEJAS IBTIMES 기자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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