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A·수학B·영어 모두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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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험생들이 이달 초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모평) 채점 결과 일부 과목에서 만점자가 6% 넘게 나왔다.

9월 모의평가 채점해 보니 국어A 만점자 비율 역대 최고
한두 문제로 등급컷 놓치면 수시 기준 충족 못 해 불합격
학생들 재수 선택 부추겨

지난 6월 모평에 이어 9월도 쉽게 출제되면서 오는 11월 치러지는 실제 수능에서도 만점자가 속출하는 등 쉽게 출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상당수 대학이 수시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자칫 수능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떨어지고, 수시에서 탈락하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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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과 모의평가를 출제·채점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3일 발표한 ‘9월 모평 채점 결과’에 따르면 이과생들이 주로 본 국어A 과목 만점자는 6.12%(응시자 25만9371명 중 만점자는 1만5873명)였다. 국어A 만점자 비율은 역대 수능·모평 중 가장 높았다. 역시 이과생들이 본 수학B도 만점자가 4.11%였다. 영어도 만점자가 4.64%나 됐다.

 수험생들은 수능 성적에 따라 1등급에서 9등급 사이의 한 등급을 받는다. 1등급은 보통 각 과목 응시자 중 상위 4%가 받는다. 그런데 이번처럼 만점자가 4%를 넘으면 만점자 전원이 1등급을 받고 한 문제라도 틀리면 2등급을 받는다. 지난해 수능에서도 수학B에서 4.3%가 만점을 받아 단 한 문제라도 틀린 학생은 2등급을 받았다.

 ‘만점자 과다’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상위권 수험생 사이에서 실력이 아닌 실수 여부로 대학 합격이 좌우되는 데 있다. 전국 대학은 수시에서 신입생의 67.4%를 뽑는다. 상당수 대학은 수시 합격자가 수능에서 일정 등급을 받지 못하면 합격을 시키지 않는다. 가령 수시 논술전형으로 연세대 의대에 들어가려면 국어·영어·수학·과학탐구 등 4개 과목 중 3개가 1등급이어야 한다. 고려대 의대는 국어·수학·영어 세 과목의 등급 합이 4 이내여야 한다. 수능 만점자가 많을 경우 아무리 논술을 잘 본 수험생도 한 문제를 틀리면 합격할 수 없다.

 수능 실수는 결국 재수 또는 반수로 이어진다. 재수생 김진성(19)씨는 “지난해 수시에서 수능 등급을 못 채워 떨어졌다. 한두 문제를 실수로 틀려 등급컷을 놓치니 ‘실력이 아니라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실수가 좌우하는 수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진로진학교육학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 양재고 김종우 교사는 “이번 모평 결과에 학생들이 ‘한두 문제를 실수하면 대학에 못 간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교사 입장에선 “틀리지 않도록 집중력을 기르자’는 것밖에 해줄 말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재수생이 양산된다”고 말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이번 모평 수준으로 수능이 출제된다면 지난해의 ‘물수능’ 혼란이 올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대학 역시 지나치게 쉬운 수능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서울대 권오현 입학본부장은 “사교육비 경감 차원에서 ‘쉬운 수능’ 기조에 찬성하지만 만점자는 1∼2% 정도가 적합하다. 한 문제를 틀려도 1등급에 포함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만점자가 많아 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지면 대학은 면접·논술 등 다른 평가를 추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평가원은 올 수능 출제 방향과 관련해 “6월과 9월 모의평가의 출제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한 학생들이 풀 수 있도록 수능을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평가원 이용상 수능분석기획실장은 “수능 난이도와 만점자 비율은 사실상 별개 문제다. 이번 평가가 상위권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을 알고 있지만 상위권에서 변별력을 갖는 어려운 문제를 낼 경우 필요 이상의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시윤·노진호·백민경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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