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10월엔 순천만 갈대를 보러 가야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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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순천만 갈대밭. 가을이 무르익은 풍경이다.

10월이 오면 순천에 가야 합니다.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삥 둘러싸고 있는(김승옥 ‘무진기행’)’ 작은 어항이 있던 곳, 지금은 1년에 3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바로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순천만 갈대밭이 무르익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최근 순천에는 새 명소가 생겼습니다. 순천만 정원입니다. 순천만 정원은 이태 전 순천시가 정원박람회를 개최할 때 조성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정원입니다. 400만 송이가 넘는 꽃과 83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지요. 이 정원에는 중요한 임무가 숨겨져 있습니다. 순천만을 지키는 호위 무사 역할입니다.

사연이 곡진합니다. 순천시가 자꾸 팽창하다 보니 세계 5 대 연안 습지 순천만이 위태로워진 겁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순천시와 순천만 사이에 방어벽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어벽이 순천만 정원입니다. 순천만을 지키기 위해 정원을 꾸민다는 발상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사실 순천만이 번듯한 대우를 받은 것도 얼마 안 된 일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갯벌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지요. 순천만도 한때는 쓰레기를 내다 버리던 곳이었습니다. 홍수를 막겠다고 순천만을 매립하려고도 했지요. 온갖 역경 이겨 낸 지금, 순천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니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생태 관광지로 거듭났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허가 문제로 시끄러웠던 지난달. 순천만 정원이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국립공원처럼 국가가 순천만 정원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개발이 아니라 보전에 힘을 실은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냅니다. 10월에는 순천만 갈대를 보러 가야 합니다. 아무리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갈대를 보고 와야 합니다.

편집장 손민호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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