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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윈도] 다이애나, 재클린 그리고 힐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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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사 이래 사진을 가장 많이 찍힌 여성은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일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가 다이애나의 기록을 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힐러리 상원의원(뉴욕)은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될 만한 첫번째 인물로 꼽히고 있다. 2004년의 주자 '8명의 난쟁이'를 다 합쳐도 관심도에서 백설공주 힐러리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 독특한 매력의 힐러리

9일 서점에 나온 힐러리 회고록 '리빙 히스토리(Living History)'는 이라크전 이후 얘깃거리를 찾던 세상사람들을 강타하고 있다. 첫날 20만부가 나갔고 1주일 만에 60만부가 팔렸다. 유명 앵커 바버라 월터스의 힐러리 인터뷰는 1천3백만명이 시청했다.

세계사에는 여성스타들이 많다. 클레오파트라.양귀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 총리, 에바 페론,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 등이 역사의 페이지에 피.땀 또는 립스틱을 남겼다.

백악관 스타들도 많다. 레이건을 움직인 낸시, 세련되고 우아한 미녀 재클린, '역사를 만들어간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스벨트 등이 있다.

이처럼 많은 여성스타 중에서 힐러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재클린.다이애나 같은 화려한 미모가 없어도, 낸시 같은 애교가 없어도 많은 이에게 그녀는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 전후 대표적 여성리더

1947년에 태어난 힐러리는 전후(戰後) 세대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다. 새로운 미국의 시대에 여성들은 사회 속에 뛰어들었다. '국가'는 더 이상 남자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57년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스푸트니크호)을 발사했다. 미국인들에겐 충격이었다. 화가 난 미국인 중엔 10세 소녀 힐러리도 있었다. 힐러리는 이듬해 만들어진 미 항공우주국(NASA)에 편지를 썼다.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려면 무슨 준비가 필요한가요"라고 소녀는 물었다. "(자격이 없으므로) 소녀는 신청할 필요가 없다"는 답장에 힐러리는 격노했다고 한다. 4년 뒤 소련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유리 가가린)까지 만들어 낸다.

명문 웨즐리여대를 다니면서 힐러리는 골수공화당인 아버지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중상류층 출신인 힐러리는 신학교수를 통해 가난한 계층을 접하면서 세상의 다른 쪽에 다가갔다. 졸업논문은 빈민에 대한 연구였다.

"3학년 때인 68년 4월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됐다. 나는 보스턴 우체국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항의행진에 참가했다." 힐러리는 회고록에서 의식의 변천을 이렇게 적고 있다.

*** 르윈스키를 넘어서

이후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관심이라는 민주당적 가치는 힐러리에게 주요 화두가 되어왔다. 그녀는 93년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2천만명을 위해 개혁팀을 지휘했다.

레이건이 조지 W 부시의 모델이고, 클린턴은 케네디를 흠모했다면 힐러리의 선생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933~45)의 부인 엘리너일 것이다.

엘리너는 하반신 마비인 남편을 도와 인종.국가.종교를 가리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그녀는 인권과 여성의 지위향상에서 미국 역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힐러리 회고록은 르윈스키 스캔들이라는 짜릿한 부분을 담고 있다. 그 대목이 회고록 열풍에 기여한 바도 클 것이다. 그러나 힐러리의 인생은 르윈스키를 넘어 엘리너로 향하고 있다.

김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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