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50회 무대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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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는 20세기 근대미술이 창조한 미술 장터다. 1895년 세계박람회를 본떠 베니스에서 시작한 이 2년제 미술제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50회를 맞으면서 1백년 역사를 자랑하게 됐다.

한때 현대미술의 최신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현장이었던 비엔날레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문화 패권의 각축장으로 타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비엔날레꾼’이라는 신조어를 낳을만큼 일부 큐레이터와 그 ‘군단(패밀리)’이 쥐락펴락하는 고급 사교장이자 백화점이 됐다. 베니스 비엔날레 1세기를 맞아 그 실상을 세 번에 걸쳐 그려본다.(편집자)

"30도를 넘어선 더위를 이길 미술은 없다." 지난 14일 섭씨 35도를 웃도는 찜통 더위 속에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서 막을 올린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2백30여년 만에 찾아왔다는 6월 무더위를 견디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비엔날레 1백년의 빛나는 역사가 날씨 앞에 무릎을 꿇은 형상이었다. 프란체스코 보나미 총감독이 내세운 '꿈과 갈등'이란 주제는 예술과 현실 또는 국제주의 대 지역주의를 빗댄 은유이지만 관람객에겐 미술의 꿈과 지독한 날씨의 갈등 사이에서 헤매는 한 판이었다.

올 비엔날레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주목받았다. 한 세기를 넘긴 비엔날레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미술 환경 속에서 과연 2년마다 세계의 미술 현상을 보여주는 현장이 될 수 있을까란 본질적 의문이 그 하나요, 설치미술과 비디오 작업이 대세를 이뤄 '어둠의 축제'란 비판을 받았던 49회 비엔날레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의 제시가 다른 하나였다.

덧붙여 각국이 국가관을 중심으로 벌이는 치열한 세 잡기의 다툼을 벗어날 묘법을 찾는 일도 총감독의 어깨에 떨어진 숙제였다.

12~13일 언론인들을 위한 '프레스 프리뷰'를 시작으로 14일 공식 개관한 26개 가관은 내심 긴장한 모습이었다.

보나미 총감독은 전권을 강력하게 휘둘렀던 49회의 전임 하랄트 제만에 비해 약세인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8개 특별전으로 구성한 '아르세날레'전에 힘을 실어줬다.

젊은 작가들의 중심을 이룬 이 '아르세날레'를 통해 주재환.장영혜.김소라와 김홍석.구정아씨 등 5명의 우리 작가들이 초대받아 한국관의 황인기.박이소.정서영씨까지 모두 8명이 참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전시회들의 전시회'를 열어 관객 스스로 미술과 작가를 발견하게 하겠다는 의도는 올 비엔날레의 곁제목인 '관람자의 독재'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

국가관을 세우지 못한 나라들이 베네치아시 전역에 흩어져 연 전시장들이 오히려 주목받은 까닭도 이런 보나미 총감독의 뜻과 통한다.

14일 오후 5시, 올 황금사자상의 국가관상이 룩셈부르크에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 전시장이 어디에 있는 거지"라고 되물었을만큼 시상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보나미가 "이런 (소외됐던) 관들이 더 커져야 한다"는 주석을 단 것은 의도된 포석이었다는 중론이다.

회화.사진.설치(비디오) 를 적절히 섞어 배치하며 '미술의 영원한 모성'인 평면작업을 다시 복귀시키려 애쓴 점도 도드라진 특징이었다. 결과적으로 '밋밋하고 중성적'이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은 올 베네치아는'늙고 병든 비엔날레''오염되고 왜곡된 비엔날레'를 되살리려는 안간힘으로 땀방울졌다. 현대미술은 벽에 부닥친 것일까.

베네치아=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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