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노조 집단 삭발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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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매각 반대를 요구하며 이 은행 노동조합(위원장 허흥진) 조합원 4천5백여명이 집단 삭발 투쟁에 돌입했다.17일 오후 소집된 조흥은행 노조 전국분회장회의에서 許 위원장은 은행장 등 전 임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파업을 방해하거나 파업에 불참한 조합원들의 해직 등을 분회장에게 긴급 제안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제4신 오후 6시

오후 5시 50분경 경영진측에서 잇따라 파업방해 문건을 내려보낸데 대한 항의 표시로 남아있던 분회장 2백여명은 자리를 주차장에서 본관 1층 로비로 옮겨 농성에 들어갔다.

분회장들은 노조위원장의 별도 지시가 있을때까지 로비를 점거하고 앉아 경영진측에서 파업을 방해하려는 공작에 대해 항의할 예정이다.

조흥은행 허흥진 노조위원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단식은 언제까지 할 것인가.
“파업 돌입 때까지 할 것이다.파업에 돌입하면 단식을 풀고 파업을 진행시킨다.”

-총파업이 당겨질수도 있다는데.
“매각협상 타결내용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서 최종승인을 받아야 한다.그 일정이 나오는 대로 이에 맞춰 파업이 당겨질 수도 있다.”

-전산망을 다운시키는 것이 파업의 핵심 내용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현재 노조상임간부 3명이 전산부에 투입돼 있는 상태다.구체적인 방법은 밝힐 수 없지만 총파업 결정이 나는대로 그들이 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정부과 국민에게 한마디 한다면.
“정부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하지만 국민들은 이번 사태가 절대 우리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재경부의 말만 듣고 우리가 국민을 볼모로 파업에 돌입한다고 비난하는데 어쩔 수 없는 행동임을 알아달라.독자생존 지켜내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

제 3신/오후 5시15분

삭발 후 각 지회별로 모임을 가진 분회장들은 오후 5시15분쯤 본점 주차장에 다시 모였다.

이종각 총무부장은 “속보”라며 “연합뉴스에 매각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소리치자 분위기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 총무부장은 “경영진측이 집단 삭발 자제요청 등의 공문으로 보내며 현혹시키고 있다”면서 “이제 시간이 없다.오늘내로 삭발을 완료하고 내일 출근할 때 언제든지 총파업에 돌입할 수 있도록 각 지회에 연락하라”고 분회장들에게 당부했다.

이에 따라 주차장에 모인 분회장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지시사항을 각 지회에 전달하는등 긴장되고 긴박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제2신/17일 오후 4시50분

각지역 노조 분회장을 중심으로한 조합원 4백42명은 오후 4시50분쯤 삭발을 마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 등 파업 투쟁가를 부른 뒤 투쟁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총파업 투쟁의 최선봉에 서서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 내겠다”는 등 3개항의 결의문을 선창자가 낭독하면 “투쟁,투쟁,투쟁”을 후렴처럼 외쳤다.이에 앞서 삭발이 시작되는 순간을 촬영하던 한 여직원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그러나 조합원들은 시종일관 비장하고 결연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겁자 이종각 총무부장은 자신의 삭발에 앞서 “가족에게 휴대폰으로 전화할 시간을 주겠다”거나 “민대가리로 승리의 현장에서 만나자”는 말로 분위기를 돌리려 애썼다.

삭발식을 마친후 각 지역별로 모임을 갖고 흩어지기 직전 이종각 총무부장은 (회사측) 파업대책반에서 집단삭발 자제 요청 공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삭발식에 이어 허흥진위원장은 본점 1층 로비에 마련된 단식 농성장으로 향했다.

조흥은행 본점 직원들은 이날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채 정상 업무를 보고 있다.이름을 밝히지 않은 본점의 한 직원은 “오늘 업무가 끝나는대로 6시쯤 지점 직원들이 모여 삭발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의 매각방침이 있었던 지난해 11월에도 노조원 1천여명이 삭발투쟁을 한 바 있다.이를 의식해서 인지 이용규 노조 부위원장은 “8개월만에 머리를 두번 깎는다”면서 “이런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원들의 삭발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 중구 남대문로 1가 조흥은행 본점 주차장 주변 곳곳에 경찰이 배치됐으나 특별히 삭발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날 삭발 현장에는 신문·방송 기자 30∼40명이 몰려들어 취재에 열을 올렸다.

# 제1신/17일 오후 3시 30분

전국에서 모인 조흥은행 노조 분회장 4백여명이 은행 본점 3층 대강당에서 사기매각 저지 및 독자 생존 쟁취를 위한 전국분회장회의를 갖고 파업 투쟁지침을 결의했다.이날 노조는 투쟁일정 보고 및 상급단체와의 연계 투쟁을 결의한 한편 마지막으로 허흥진 위원장이 다음과 같은 특별 결의를 제안했다.

우선 허 위원장은 "파업과 관련 전직원이 참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방해하거나 불참하는 조합원은 스스로 노조조합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발본색원해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허 위원장은 또 "현재의 경영진을 인정하지 말자"며 "오늘 이시간 이후 행장 등 전임원이 사퇴할 것을 요구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측은 이에 따라 파업 방해나 불참 조합원에 대해 운영위에서 제명하고 제재(즉 조흥은행 직원으로써의 해직)하도록 분회장에게 긴급 건의했다.

이어 이들은 본점 주차장에 있는 삭발 투쟁식장으로 향했다.이날 참석한 4백여명의 분회장 중 30여명은 이미 삭발을 하고 회의에 참석,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제일 먼저 허 위원장 이용규 부원장 등 노조 지도부 30명을 시작으로 삭발이 시작됐다.삭발에 앞서 허위원장은 "1백6년 조흥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역사적 사명과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며 "머리는 자르면 다시 나겠지만 한번 잘린 자존심은 다시 살리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허위원장은 "이 삭발이 끝난후 단식 농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삭발식장 단상에는 10개씩 네줄로 놓인 40개 의자에 지도부들이 앉고 이미 삭발을 하고 온 분회장들이 뒤에 서서 머리를 깎아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강제합병 반대’·‘민족은행 사수’라고 쓰인 하얀 천을 두르고 머리를 잘랐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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