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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해외 서점가] “미국의 원폭투하는 범죄다” ‘가해자 일본’ 가린 일왕 후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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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의 전쟁 책임
다케다 쓰네야스 지음, PHP연구소 출판

일본 옛 왕족 가문 출신의 보수 논객이 있다. 이름은 다케다 쓰네야스(竹田恒泰·40). 메이지(明治) 일왕의 고손자(손자의 손자)다. 다케다 가문은 일본 패전 후 미국 점령군 사령부에 의해 왕족의 신분을 빼앗겼다. 그런 그가 도발적 책을 출간했다. 『미국의 전쟁 책임』이란 제목 밑에 ‘전후 최대의 금기에 도전한다’는 부제를 달았다.

전후 70년, 전 세계가 일본의 전쟁 책임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다케다는 일본 침략사에 쏠리는 비판의 시선을 미국으로 살짝 돌린다. 그는 제1장 ‘일본의 전후 최대 금기’에서 “미국을 규탄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일본이 일본의 잘못을 알고 미국이 미국의 잘못을 알아야 진정한 화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비판한다. 원폭 투하의 목적이 전쟁 종결을 앞당기려 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어디까지 옳은 것인가’란 의문을 던진다. 제8장에선 ‘미국의 행위는 틀림없이 전쟁 범죄’라고 결론을 내린다.

『미국의 전쟁 책임』은 지난달 11일 출판 이후 일본 내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 10위권 안에 머물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걱정되는 건 이 책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일본은 미국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피해자’란 인식이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의 가해자란 사실을 은연 중에 덮어버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미래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선 안 된다’며 언급한 일본의 전후(戰後) 세대가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이 더욱 우려된다.

 다케다는 2010년 『일본은 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가』란 책을 펴내 ‘일본 예찬’의 붐을 일으켰다. TV 프로그램 등에선 애국주의를 내세우며 보수 우익세력을 대변하고 있다. 2013년엔 대표적인 혐한(嫌韓)시위 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에 대해 “좋은 일도 했다”는 등의 옹호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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