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에 빠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주인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숨 가쁘게 달려온 메이저리그 2015시즌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들은 이제 각 20여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 만큼 1년 농사의 결과물 역시도 속속 나오고 있다. 휴스턴과 텍사스가 치열한 경합을 펼치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를 제외하면 나머지 다섯 지구의 우승팀들은 일찌감치 윤곽이 잡힌 상태이다. 개인 수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메리칸리그 MVP는 조쉬 도날드슨(토론토),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은 댈러스 카이클(휴스턴), 내셔널리그 MVP는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등이 수상의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
종전엔 자책점, 승률 등이 변수
최근들어 수비력 등도 고려해
커쇼, 그레인키, 아리에타 각축

한가지 예외가 있으니 바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부문이다. 세 명의 선수가 치열한 경합을 펼치고 있으며 여전히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경쟁의 주인공은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잭 그레인키(LA 다저스), 제이크 아리에타(시카고 컵스) 이다. 세 선수는 모두 상이한 부분에서 강점을 나타내고 있으며, 투표권이 있는 유명 기자들의 의견들 역시 크게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제이크 아리에타의 성적 비교
* 통계 기준 : 내셔널리그 9월 16일
* FIP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
(FIP 계산식 : FIP = (13*피홈런+3*(볼넷+사사구-고의사구)-2*삼진)/이닝 + 보정계수)
* fWAR, bWAR (Wins Above Replacement) : 팬그래프닷컴, 베이스볼레퍼런스의 대체 선수 대비 승수 기여도
* WHIP (Walks and Hits Per Innings Pitched) : 이닝당 출루 허용

먼저 그레인키는 대중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이는 통계인 평균 자책점 항목에서 1.61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61이라는 수치는 최근 수년간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훌륭한 기록이다. 지난 30년간 이보다 더 좋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명예의 전당 투수인 그렉 매덕스 단 한 명 뿐이었다. (1994년 1.56)
뿐만 아니라 17승 3패, 0.850이라는 훌륭한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리에타의 경우는 다승이 눈에 띈다. 20승은 특급 에이스를 상징하는 숫자로 꼽히는데, 세 선수 중 유일하게 20승 고지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4년간 3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자타공인 최고의 투수 커쇼의 경우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지표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다른 두 선수에 비해 압도적인 삼진 수를 바탕으로, FIP와 팬그래프 기준의 WAR인 fWAR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변화하는 사이영상 수상 경향
과거 사이영상의 가장 큰 영향력은 전통적인 통계인 평균자책점과 다승 그리고 승률에 있었다. 2004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결과는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투표로 꼽힌다. 당시 랜디 존슨(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16승 14패, 245.2이닝, ERA 2.60, FIP 2.30, fWAR 9.6 등 다승과 승률을 제외한 모든 투수 지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로저 클레멘스(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경우 18승 4패, 214.1이닝, ERA 2.98, FIP 3.11, fWAR 5.7을 기록하며 승률을 제외하고는 리그 수위를 차지한 통계항목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투표권을 가진 기자단은 “랜디 존슨은 승률이 5할에 불과한, 팀에게 너무 많은 패를 가져도 준 투수다”라는 논리를 들어 그 해의 사이영상 수상자로 로저 클레멘스를 선택했다.

10년이 흐른 뒤인 지난해 2014년 사이영상 투표 결과는 이미 대세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코리 클루버(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평균자책점과 승률, 이닝에서 우위를 보인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 매리너스)를 제친 것이다. 당시 기자단의 투표 후 변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들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각종 야구 관련 통계가 발전하면서 기자들의 생각이 진일보했음을 읽을 수 있다. 새롭게 투표권을 받게 된 젊은 기자들은, 과거처럼 단순히 승리와 승률, 평균자책점 등 보이는 기록만으로 사이영상 수상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수비력, 구장의 성향 등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투구를 보인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웃을 주인공은?
앞서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는 평균자책점과 승률에서 크게 앞서 있는 그레인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기자단의 투표 경향은, 다소 불운하지만 더 압도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주는 커쇼에게 무게추가 쏠린다. 아리에타의 경우 두 기준 모두에서 선두를 바짝 추격하는 2위의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변수는 그레인키와 커쇼가 같은 팀 소속이라는 점이다. 사이영상 투표 역시 감성을 가진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지역 혹은 자신이 잘 아는 팀의 선수에게 손이 가게 마련이다. 두 선수는 서로의 존재 때문에 '친 LA 다저스'성향 기자들의 표를 나누어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아리에타의 경우 시카고 지역의 표를 독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선거판에서 흔히 보이는 후보단일화 실패로 인한 제 3 후보의 어부지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올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경쟁은 다양한 경기 외적 요소까지 고려해야할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역대급의 NL 사이영상 경쟁. 리그를 대표하는 세 선수의 투구 하나하나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 봐야하는 이유이다.

임선규 대전대 한의대 재학 중. 스포츠 콘텐트 생산 업체 bizball project에서 MLB 칼럼을 담당하고 있다. 포털 서비스 네이버 스포츠의 라디오 프로그램 ‘트루볼쇼’에 출연 중이다.

임선규 bizball project 야구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