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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걸음 전술로 회의 지연시켰지만…참의원 본회의장의 안보법안 처리순간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안보법안을 성립시킨 참의원 본회의는 19일 0시10분쯤 시작됐다. 표결은 여야 의원 5명의 찬반토론을 거쳐 진행됐다. 야당은 16일부터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저항해왔지만 결국 자민ㆍ공명당의 수적 우위를 넘지는 못했다.

야당은 18일에도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최대한 활용했다.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의원은 이날 총리 문책결의안 표결 때 최대한 시간을 늦추기 위해 이른바 소걸음(牛步) 전술을 채택했다. 의석에서 투표함이 있는 단상으로 가면서 걸음걸이를 늦췄다. 상복 차림의 야마모토는 다른 의원들이 전부 투표를 끝냈는데도 투표함으로 가지 않았다. 야마자키 마사아키(山崎正昭)참의원 의장이 종용하자 그제야 등단했다. 그리고선 자민당 의원과 출석해 있던 아베 총리에 합장을 하기도 했다. 야당의 다른 의원은 그에게 동조하지 않았다. 야마모토 의원은 “의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19일부터의) 연휴에 돌입할 때까지 그러고 싶었다”며 “자민당이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여서 상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제 1 야당인 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간사장은 내각 불신임안 결의안 때 2시간 가량 발언했다. 그는 “오늘(18일)은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한 날”이라며 “아베 총리가 되돌리려고 하는 일본은 쇼와(昭和) 초기의 폭주하던 시대의 일본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후 최악의 법안을 전후 최악의 절차로 강행하는 자세는 폭거 그 자체”라고 말했다.

야당은 전날에 이어 18일에도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참의원 특별위원장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냈지만 결과는 하나마나였다. 야당은 8일 시간을 끌기 위해 4개의 결의안을 중ㆍ참의원에 냈지만 번번이 집권 다수당의 벽에 부딪혔다. 안보법안을 둘러싼 일본 국회가 ‘스케줄 싸움’ 양상을 띤 것은 19일부터의 5일 황금연휴 때문이다. 자민ㆍ공명당은 18일을 넘기면 시위대가 넘쳐날 것을 우려해 의사 일정을 재촉했다. 문책 결의안의 경우 의원 1명의 발언시간을 10분으로 제한했다. 마지막 관문인 참의원 본회의는 15분으로 결정했다.

안보법제 심의 과정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정권의 의지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연립여당의 중ㆍ참의원 과반 안정 의석은 그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전후 일본의 안보 체제의 근간을 바꾸는 안보법제는 이 구도 하에서 성립됐다. 이번 안보법제에 포함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아베 총리의 숙원이었다. 그는 1기 내각 당시 이를 위한 간담회를 직속으로 설치했다. 2012년 2기 내각 발족 후에도 이 간담회를 통해 논의를 진행해왔다.

지난해 7월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은 이번에 1년 2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전후 일본의 어느 내각도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법제화에는 ‘개헌 없는 개헌’의 뜻도 담겨 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자립과 자주 헌법은 아베의 또 다른 염원이다. 안보법제를 통해 자위대의 활동 반경과 역할도 대폭 늘어나게 됐다. 전후 70년 동안 헌법과 함께 걸어온 일본의 평화 체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일 자민당 총재에 연임돼 2018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됐지만 순항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국민의 절대적 다수가 이번 국회에서의 성립에 반대하는 안보법제 처리의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주사변=1931년 9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남만주 선로를 폭파한 사건. 일본은 이 사건을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날조하며 철도 보호를 구실로 군사 행동을 개시했다. 이듬해 일본은 만주국을 세워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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