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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예방 효과” 건강요리 전도사 된 보건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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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부천시내 보건소의 저염식 요리 강습이 인기다. 지난 16일 소사보건소의 한 직원이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월남쌈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사진 부천시]

“요기 종잇장 같이 생긴 것은 뭣인감?”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범박휴먼시아아파트 1단지 경로당. 넓은 테이블 주변으로 모여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이·파프리카·파인애플·닭가슴살 등과 함께 담겨 있는 라이스 페이퍼를 보고서다. “이건 라이스 페이퍼라고 하는 건데요, 오늘 만들 월남쌈에 꼭 필요한 재료죠. 우리가 밥을 해먹는 쌀로 만들었어요. 지금은 딱딱한데 물에 적시면 부드러워져요. 한번 만들어 볼까요?” 소사보건소 박정소 간호사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신기한 듯 라이스 페이퍼를 물에 담갔다. “어? 정말 순식간에 부드러워지네. 호호호.” 할머니들이 주고받는 웃음에 경로당이 한결 밝아졌다.

 경기도 부천시 보건소들이 실시하는 요리강습에 동네 주민들의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 음식도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실생활요리를 주로 선보여 인기가 높다.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만 넣은 저염식 요리라 건강에도 좋다.

소사보건소의 ‘경로당 찾아가는 요리교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매달 3차례씩 지역 경로당을 방문해 교육을 하는데 “우리 동네도 좀 와달라”는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

 주된 요리는 샌드위치와 월남쌈. 손을 많이 쓰는 요리여서 치매나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다는 게 보건소 측의 설명이다.

백명숙 소사보건소 지역보건팀장은 “경로당에 계신 어르신들 연세가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이라 불이나 칼을 쓰기엔 위험해 손으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레시피도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개발했다. 보건소 영양사와 인근 대학 조리학과 교수들에게 조언을 구해 내부 시식을 거친 뒤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을 메뉴로 내놨다. 샌드위치 한 면에 키위 소스를 살짝 바르고 월남쌈엔 통조림이 아닌 생파인애플를 넣으면 더 맛있다는 비법도 이렇게 나왔다.

 수업은 철저하게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췄다. 오이와 당근 등 칼로 썰어야 하는 채소는 직원들이 직접 얇게 채를 썰어 손질해온다. 라이스 페이퍼를 적실 물도 식당과 달리 미지근하게 준비한다. 어르신들 손의 감각이 무뎌 뜨거운 것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고령자인 김영래(92) 할머니는 “월남쌈은 처음 먹어보는데 만드는 법도 쉽고 맛도 좋아 혼자서도 종종 해먹을 생각”이라며 웃었다. “요리는 여자들이 하는 것”이라며 앞치마 두르기조차 거부하던 할아버지들도 어느새 “내가 할머니들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자랑할 정도로 푹 빠졌다.

 부천 오정보건소는 매주 수요일마다 전문 강사를 초빙해 요리수업을 연다. 주변 대학 조리학과 교수 등을 불러 만성질환자나 홀몸 어르신, 은퇴 준비자 등을 위한 맞춤형 요리교실을 운영한다. 주 메뉴는 저염 음식. 수업 전 미각 테스트로 참가자들이 짠맛에 어느 정도 적응돼 있는지 살펴본 뒤 저염식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국간장에 무·사과·양배추즙을 넣어 끓이는 저염 간장과 된장에 율무가루와 파인애플·양파를 갈아넣어 저염 된장을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파·깻잎·쑥갓 등 향미 채소를 넣으면 조미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거나 “자반고등어보다는 생고등어에 카레 가루를 살짝 뿌리면 비린내도 없어지고 맛도 좋아진다”는 등의 팁은 덤이다.

 이들 보건소 요리교실은 모두 무료다. 매달 초 20~30명을 선착순으로 신청받는다. 정해분 소사보건소장은 “젊은 층에서도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을 많이 해와 내년부터는 아빠 요리교실도 개설하고 메뉴도 보다 다양하게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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