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소득 2만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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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81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일본이 2만달러에 도달한 것은 6년 만이고,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것은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다.

워낙 인구가 많은 미국의 경우 1만달러가 된 시점은 78년인데 2만, 3만달러에 이르기까지 각각 10년, 9년이 걸렸다. 반면 미니국가 싱가포르가 89년에 1만달러를 달성한 뒤 2만달러 나라가 된 것은 5년 만이었다.

세월이 흐른다고 2만달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반세기 전엔 세계 5대 부국에 들었으나 지금은 9천달러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YS 문민정부 시절인 95년에 1만달러를 달성하더니 DJ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이르기까지 8년째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성장 자체가 행복지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도소비를 경험한 나라의 성장정체는 국민의식을 불안하고 우울한 쪽으로 몰고간다. 무엇보다 실업이 늘어나고 소득 불균형이 깊어져 중산층과 서민의 삶이 고단해진다.

얼마 전 여의도에 내려준 40대 중반의 택시 운전사로부터 "첫번째 불행은 내가 태어난 것이고, 두번째 불행은 결혼해 자식을 낳은 것"이라며 생활고를 한탄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속에서 눈물이 났다.

성장정체 사회의 단면을 본 듯해서다. 비교적 탄탄한 항공 화물업체를 운영하는 40대 후반의 사업가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외엔 외국에 실어나를 게 없다"고 했다.

여기에 자동차 하나가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산업은 국내 경쟁력이 떨어져 죄다 기업하기 좋은 중국과 동남아로 떠난다고 했다.

"앞으로 10년간 뭘 가지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 난다"는 한 기업인의 절규가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암시하는 묵시록은 아닐까 하는 상념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각 부처에 공식.비공식 개혁주체 조직을 만들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가겠다"고 한 말이 또 정치권을 소란스럽게 하고 있다.

모처럼 제시된 '2만달러 시대'라는 희망의 국정목표는 '모택동식 홍위병 만들기'라는 방법론 시비에 빛을 잃었다. 盧대통령이 대한민국호의 선장답게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는 진지한 방법론을 국민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