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고척돔 이사 앞둔 넥센, 40억 뛴 전셋값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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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돔야구장 고척스카이돔(고척돔)이 완공됐다. 서울시 구로구에 우뚝 솟은 이곳에서 15일 여자 야구대표팀과 서울대학교 야구부의 5이닝 경기가 테스트 이벤트로 펼쳐진다. 고척돔은 서울시가 동대문야구장의 대체 구장을 논의한 2005년 이후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한 자리에 새 야구장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계획을 밝히며 무산됐다. 제2안으로 잠실운동장 부지가 떠올랐지만 역시 흐지부지됐다.

지난 2008년 서울시는 고척동에 현대식 야구장(공사비 408억원)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하프돔(천장을 절반쯤 덮은 구장)으로 계획을 바꿨다가 2009년 완전돔으로 청사진이 또 바뀌었다. 설계가 8차례나 변경된 끝에 공사비는 2443억원으로 급증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한국의 첫 돔야구장을 짓는 동안 철학과 비전은 커녕 최소한의 계획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고척돔은 축하를 받기보다 우려를 더 많이 사고 있다. 서울 잠실구장을 쓰고 있는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홈구장 이전을 한 번도 검토하지 않았다. 낙후된 목동구장을 2008년부터 썼던 넥센 히어로즈가 유일한 협상 파트너다. 그러나 돔구장이 완공될 때까지 집주인 서울시는 세입자 넥센과 '전세계약'을 하지 못했다. 정해진 건 방향성이 모호한 집들이 행사(여자 대표팀과 서울대 야구부 경기) 뿐이다.

넥센 구단은 목동구장을 일일 대관 형태로 써왔다. 야구장 사용료와 사무실 임대료, 관중수입의 10%, 야구장 광고수입의 일부 명목으로 연 40억원을 서울시에 냈다. 야구장 광고권을 서울시가 행사하는 LG·두산(운동장 사용료 25억원씩)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넥센도 적지 않은 금액을 낸 것이다.

서울시는 고척돔을 목동구장과 같은 방식으로 빌려줄 계획이다. 넥센에 요구하는 사용료는 연 80억원으로 알려졌다. 야외구장보다 돔구장의 냉·난방 등 관리비용이 훨씬 더 들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의 돔구장이라 광고·관중 수입이 증가할 테니 사용료를 더 내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돔구장 유지비를 넥센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받으려 하고 있다.

넥센 구단은 "야구장 광고는 이미 포화상태다. 목동구장에는 원정팀 팬들이 많은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척돔으로 이전할 경우 관중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야구장 사용료가 두 배 이상이 되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시간은 서울시의 편이다. 목동구장은 내년부터 아마야구 전용으로 쓴다. 이는 지난해 서울시와 대한야구협회의 합의사항이다. 넥센이 목동구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뒤 고척돔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세금을 100% 이상 올린 뒤 새 집으로 이사하라는 격이다. 넥센이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연고권 이전밖에 없다. 그러나 프로구단을 수용할 만한 인프라를 갖춘 도시를 찾기는 어렵다.

넥센은 10개 프로구단 중 유일하게 모그룹이 없는 팀이다. 독자생존을 위해 전 직원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지만 매년 40억~6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고척돔 이전으로 40억원의 적자가 추가로 발생하면 야구단 존립마저 흔들릴 수 있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2년간 야구장 광고권을 넥센에 준다는 유인책을 내놨다. 2018년부터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광고권을 회수해 고척돔에서 직접 수익사업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넥센 구단은 "야구 시즌인 3월부터 11월까지라도 광고권을 포함한 경기장 운영권을 줬으면 좋겠다. 야구단이 만드는 수익을 서울시와 구단이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목동구장에서 생존을 걸고 구단을 운영한 넥센에겐 파이(매출)를 키울 능력과 노하우가 있다. 그들에게 운영권을 일부 맡기고 이익을 나눠 갖는 게 서울시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고척 야구장이 돔구장으로 지어진 것, 완공시기가 2009년에서 2015년으로 늦어진 것, 공사비용이 5배 이상 뛴 것은 서울시의 오락가락 행정 때문이었다. 늘어난 비용을 넥센 구단에 떠넘기는 건 불합리하다. 프로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자 문화 콘텐트로 성장한 만큼 서울시의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구단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서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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